속 터지는 오늘 하루, 내일은 소통 한방002
"자, 퀴즈 한번 맞춰보세요. 지피지기 뒤에 나오는 말은?"
"백.전.백.승!!"
"땡"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모두 승리한다.' 너무 자주 들어서 상식처럼 되어버린 문구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원문과 다르게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 원래 문구는 "지피지기 백전불태"가 맞습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비슷해 보입니다.
"백번 모두 이기는 것이나, 백번 모두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나... 아무튼 상대와 나를 잘 알고 싸움에 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그런 훌륭한 말씀 아닌가요? 뭘 그렇게 깐깐하게 따지세요?"
아닙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별것 아닌것 같은 그 한글자 '패(敗)'와 '태(殆)'의 차이가, 손자병법 전체를 관통하는 큰 의미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럼 원래 오리지널 문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이 문구는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손자병법 최고의 명문구입니다. 해석 자체는 간단하지만 그 속뜻을 잘 파악하기 위해 앞뒤 문맥 흐름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문구가 속한 모공편의 '모(謨)'는 전략, '공(攻)'은 공격을 의미하는데, 직접적인 전투가 아닌 전투에 대한 전략을 모의한다는 의미입니다. 손자가 말하는 가장 기본적인 전쟁원칙은 '우리편이 가장 다치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적의 침략의도를 미리 꺾어버리거나(벌모), 외교적으로 대처하거나(벌교), 그래도 안되면 어쩔 수 없이 군사적으로 대응(벌병)하되,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만 성을 공격(공성)하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백전백승'이라는 문구를 직접 언급하기까지 합니다.
"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백전백승하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이 아니라, 안싸우고 굴복시켜야 제일이다)
'백전백승'에 목매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으면 일부러 콕 짚어가면서까지 언급하였을까요. 한마디로 손자는 전쟁에서 승률을 높이려고 노력한 싸움꾼이 아니었습니다. 한두번 져도 좋으니 최대한 합리적으로, 안전하고 피해없게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아니, 백번 싸워서 백번 다 이기면 그냥 좋은 것 아니에요? 무슨 차이가 있나요?"
백전백승과 백전불태,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 실제 행동이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그 차이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얼마전 감기가 잘 안낫는다며 78세 할아버지 한분이 아드님 손에 이끌려 쿨럭쿨럭 기침을 하며 들어 오셨습니다. 기침이 벌써 1달째로 약국에서 종합감기약을 계속 드셨는데 전혀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럴때 대처할 방법은 크게 2가지입니다.
1) 환자를 제 손으로 꼭 고치기 위해 강력한 약으로 <바로> 치료에 들어가거나,
2) 당장 약을 써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이상은 아닌지 <확인부터> 하기
제가 백전백승 마인드를 가졌다면 당연히 1번전략으로 당장 처방을 해드렸겠지만, 그러면 따져봐야 할 경우의 수를 놓칠 수도 있으니 실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2번을 선택합니다. 제대로 기본 진찰을 받아본 적도 없이 지내온 분이므로 내과약이 효과 없었다고 섣불리 단정짓기 어렵습니다. 내과로 가서 엑스레이와 기본 진찰을 거치고 별 이상이 없다고 하시면 다시 오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래야 안전하게 대처하고 치료해 드릴 수 있을테니까요.
며칠뒤 그 환자분 아드님에게 전화가 옵니다.
"... 저는 아버지 몸이 약해서 감기가 잘 안나으시나 가볍게 생각하고 보약이나 지어드리려고 했었어요. 원장님 말씀듣고 내과가서 진찰받으니 폐렴이 너무 심하다며 대학병원으로 당장 입원하라고 하셨어요. 큰일날 뻔 했지요. 퇴원하시면 보약지으러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은 병이 심각해도 증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이 환자 분은 병이 더 커지기 전에 잘 발견되어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저는 환자 100명을 잘 고치는 것보다 1명이라도 위험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오래전 손자병법의 이 문장 "지피지기 백전불태"를 읽고 깨달은 이치였습니다.
그럼 실제로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할 때 '백전불태'의 마음으로 대처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에 대해 다음 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호르몬닥터 권영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