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잡화점 883
<원인분석은 구체적으로>
1.
“김대리, 그렇게 일을 대충하니까 이런 실수를 하쟎아요.”
어떻게 일하면 대충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키보드를 독수리타법처럼 장난치듯 두드리고, A4서류에 스테이플러를 삐뚤빼뚤 박으면 대충인가. 김대리 잘못을 지적하려면 구체적인 사실위주로 정확히 말해야 한다.
2.
‘대충’이라는 말은 어떤 사실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 태도에 대한 인신공격 성격이 강하다. 실수가 계속 반복되다 보니, 이번 한번은 따끔하게 인격적 질책을 해야겠다 싶으면 그럴 수도 있다. 그 외에는 김대리가 납득할 수 있게 인과관계에 근거한 구체적인 말로 조언하면 좋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를 자주 쓰는 사람이 있다. 진취적으로 생각하라, 미래지향적으로 따져보라, 창의적으로 사고하라... 듣기에는 번지르르하지만 상대의 반응은 늘 한결같다. “아, 예~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도무지 알 수가 없네).”
3.
고흐 모네 르누아르 같은 쟁쟁한 인상파화가들이 많다. 그들의 명성에 가려진 ‘베르트 모리조’라는 화가도 있었다. 23세 나이에 살롱에 출품한 작품이 당선되었고, 27세 때 마네를 만나 그의 그림모델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왜 이런 실력자의 이름을 알지 못할까.
“여성화가라서 그래요.”
맞다, 그는 여자다. 그래도 의문점은 남는다. 여자라서 그림소재가 제한되고, 그림활동을 하러 여기저기 다니기 어려웠던 사실도 이해한다. 그렇다면 그려낸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적어도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림 한구석에 작가의 성별을 따로 표시하지도 않는데, 사람들이 여자가 그린 그림을 귀신같이 알아 차리고 무시했을까.
4.
답은 비평가들의 행동에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의 가치는, 비평가들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대단하다고 호평하거나 문제가 많다고 비난하거나, 그런 설왕설래 속에 스타가 만들어진다. 처음 고흐의 작품에 대해 비평가들이 듣보잡 미친 화가의 작품이라고 비난했지만 악플은 무플보다 나았다.
비평가들은 모리조의 작품에 대해 아무 평을 하지 않았다. 여자를 상대로 쎈 멘트를 날리면, 남성으로서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나 보다. 호평도 비평도 없으니 모리조의 그림은 무관심속에 잊혀졌다. 최근에야 그의 작품세계가 주목받기 시작하고 있다. 머잖아 고흐보다 유명해질 지도 모른다.
5.
원론적인 말을 늘어놓으면 적어도 틀렸다는 소리는 듣지 않는다. 누가 태클 걸까 두려울 때 반박불가 모드로 이렇게 모호한 말을 한다. 문제를 개선하려면 구체적인 포인트를 짚어야 한다. 모리조 같은 경우가 또 생기지 않으려면, 비평가들이 성별이나 출신에 상관없이 모든 작품에 대해 평가하도록 하면 된다. 여자라서 그랬다는 사망진단서 진단명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 보고서는 대충대충 해야지.’
김대리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대충이라는 말로 지적해봐야 반감만 생긴다. 작년 데이터를 직접 찾아보지 않고, 어느 블로그 내용을 복붙한 행동이 문제였다고 알려주어야 한다. 구조적인 문제가 근본원인은 맞지만, 그런 부분만 문제삼고 가만 있으면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