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잡화점 894
<약자라고 무조건 먼저 사과할 필요는 없다>
1.
“팀장님, 지난번 회의 때 다음 주 수요일까지라고 하셨는데, 갑자기 오늘내로 완성하라고 하시면 어떡합니까.”
분명 팀장님은 나보다 지위가 높다. 나이도 많고 사회생활 경험도 풍부하다. 그렇다고 모든 행동이 다 옳다는 말은 아니다. 그 역시 실수를 하고 잘못도 저지른다. 필요하면 팀장님과도 싸워야 한다.
2.
“네? 팀장님하고 어떻게 싸워요? 에이, 말도 안 됩니다.”
‘싸움’이라는 단어에서 벌써 멈췄다면, 계속 그런 부당함을 감수하고 사는 수밖에 없다. 팀장님이 악의적일 수도 있고, 내 처지를 잘 모르고 계실 수도 있다. 우선 사실관계부터 확인한 뒤, 팀장님 본인의사가 확실하다면 일단 부딪쳐 봐야 한다.
싸움이란 서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주장하는 과정이다. 굳이 물리적인 힘이나 큰소리로 험악한 분위기를 내지 않아도 된다. 싸움이라는 말 대신, ‘강자와의 협상’이라고 표현하면 다르게 보일 지도 모르겠다. 물론 협상결과가 나에게 불리한 쪽으로 결론날 수도 있지만, 실패하더라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앞으로 팀장님이 나한테는 절대 함부로 말씀하시지 못한다.
3.
우리나라가 브라질과 축구 시합할 때, 미리 겁먹고 수비만 하면 무조건 진다. 수비를 하더라도 우리가 이기기 위한 전술로서 선수비 후역습을 선택할 수는 있다. 공은 둥글다고 말하듯 경기를 해보기 전에는 승부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협상의 과정은 모두 똑같다. 내 실력부터 파악한 뒤 상대의 전투력을 측정한다. 주어진 협상의 상황에서 벌어질 경우의 수를 미리 가정하고, 나에게 유리한 필승전략을 세운다. 상대가 강하고 약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처음부터 질 생각을 하고 질 준비부터 시작하니 진 것뿐이다.
4.
어느 날 자녀가 아빠에게 크게 대든다. 대학가고 머리가 컸다고 이제 큰소리도 낼 줄 안다. 객관적으로 아빠의 완벽한 잘못이지만, 이럴 때 부모는 절대 순순히 물러서지 않는다. 회심의 카드를 꺼내며 전세를 역전시키려 한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자녀입장에서 가장 큰 약점이다. 자녀가 인간의 탈을 쓰기전 동물형상으로 엉금엉금 기어 다닐 때, 기꺼이 보살폈다는 사실만으로 부모는 한평생 주도권을 쥐려한다. 죄책감으로 미리 무너질 필요가 없다. 그 일은 그 일이고, 이 일은 이 일이다. 상대의 약점을 잡아 계속 억지 부리는 행동은, 성숙한 성인의 행동이 아니다.
5.
상대가 부모든 팀장님이든 부당하고 잘못된 행동이라고 느끼면 당당히 맞서길 바란다. 물론 맞선다는 말과 무례한 행동은 전혀 다르다. 공손하게 예의를 갖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조목조목 이어가면 된다. 그 정도 발언도 못하고 탕비실에서 팀장님 뒷담화로 정신승리만 누리려 하면, 내 인생은 늘 제자리 뛰기다.
처음에는 심장이 벌렁거리고 말도 잘 안나온다. 딱 한번이다. 맨 처음 관문만 잘 통과하면, 그 다음부터는 너무 쉽다. 그런 말을 한다고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도 아니고, 팀장님한테 항명하는 몹쓸 부하직원이 되지도 않는다. 자식이라고 아랫사람이라고 무조건 사과하며 비굴해지지 말라. 지금 주저하고 있는 당신을 위해 힘찬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