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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Jul 21. 2023

@소통잡화점 895 <도울 때는 상대방 욕구부터 파악>

@소통잡화점 895

<남을 도울 때는 상대방 욕구부터 파악>     


1. 

“저 컴퓨터를 좀 배우려고 왔어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70대 할아버지가 컴퓨터 학원에 들어선다. 학원 강사는 너무도 친절했다. 윈도 프로그램의 기본부터 컴퓨터 구성원리까지 초등학생 대하듯 하나하나 설명했다. 딱 3일 만에 할아버지가 포기하셨다. 도대체 어디가 문제였을까.     


2. 

남을 도울 때 꼭 기억해야 할 1장 1절이 있다. 그 사람을 진심으로 도우려는 따뜻한 마음보다 더 중요한 내용이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 욕구부터 알아야 한다. 마케팅에서 흔히 말하는 need와 want의 차이다.      

콜라를 너무 좋아해서 찾는 사람과, 목이 마를 때 시원한 음료의 대명사로 콜라를 말한 사람에 대한 응대는 완전 다르다. 갈증 때문이라면 콜라가 없더라도 사이다나 주스를 권하면 그만이다. 우리 가게에 콜라가 똑 떨어졌지만 친절을 베풀겠다며, 뜨거운 날씨에 손님과 30분을 걸어가 다른 가게에서 콜라를 사실 수 있게 돕지 않아도 된다. 기껏 도와드리고 한소리만 듣는다.     


3. 

어깨가 아프다며 할머니 한 분이 오셨다. 정형외과와 다른 한의원을 다녔지만 잘 낫지 않는다고 하셨다. 어깨 상태를 보니 그다지 나쁘지 않은데, 본인은 한사코 불편하다고 하셨다. 어깨를 꼭 고쳐야 한다고 강조하신 부분이 떠올라 왜 그러시는지 여쭤보았다. “얼마 전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우리 손주 생일에 꼭 쳐주고 싶은 곡이 있거든요.”     


모든 퍼즐이 풀렸다. 그 동안 치료하시고 전체 근육상태는 많이 좋아졌지만, 피아노 칠 때 힘들어가는 딱 그 부분이 덜 풀렸다는 말씀이었다. 팔과 손가락에 힘줄 때 무리가 되는 부분 위주로 침을 놓아드렸다. 별로 한 짓도 없는데 명의소리 들으면 좀 민망하다.     


4. 

선한 마음으로 남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다가 낭패를 겪는 경우가 많다. “어휴, 이렇게 친절하신 분이 다 계시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머릿속으로 기대했던 그런 감사인사는 커녕, 상대는 내 도움 자체를 무시해 버린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무슨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 아쉬워하는 부분이 어디인지부터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 퇴근 5분전 엑셀파일 붙잡고 끙끙대는 김대리는, 데이트시간에 늦어서 조급하다. 친절하게 다가가 엑셀기능을 설명하려고 들지 말고, 남은 일을 대신해주는 편이 백번 낫다.     


5. 

그 할아버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컴퓨터학원에 다시 들렀다. 이번은 달랐다. “할아버지, 갑자기 컴퓨터는 왜 배우려고 하세요?” 강사는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컴퓨터라는 need뒤에 숨은 want가 무엇인지 질문했다.     


“네, 더 늙기 전에 자서전을 한번 써보고 싶어서요.”

이 할아버지는 프로그래밍을 하시거나, 집에서 하드디스크 뚜껑을 열어 램을 뺐다 끼웠다 하실 일조차 없다. 강사는 노트북을 가져오시라고 한 뒤, 부팅만 하면 바로 한글프로그램이 뜨도록 세팅해 드렸다. 아래한글 위주로, 글쓰기 복사하기 붙이기 저장하기까지 딱 일주일 만에 교육이 끝났다. 신난 할아버지는 이제 사진편집까지 가르쳐 달라고 조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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