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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Aug 17. 2023

@소통잡화점 909 <언어감각>

@소통잡화점 909

<언어감각>     


1.

“저 선수 정말 미쳤네, 완전 노마크 슛이었는데 어떻게 막았을까.”

여기저기 ‘미쳤다’는 표현이 많이 들리지만, 나는 아직도 듣기에 불편하다. 그 말을 들을 때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머리에 꽃을 꽂고 혼자 중얼중얼 거리는 사람의 모습이다.     


2.

말이나 글은 TPO에 맞아야 한다. 똑같은 단어를 말하더라도, 듣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표현을 달리해야 한다. 의사끼리 모여 이야기할 때 DM이라고 하면, 누구나 당뇨병으로 생각한다. 반면 일반인들에게 DM이라고 하면 direct message, 즉 개인메시지라는 뜻으로 알아 듣는다.     


그 단어나 문장이 나에게 아무리 익숙하더라도, 상대방은 낯설게 느낄 수 있다. 상대 위주로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 전문용어라도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있고, 거부감을 느끼는 레벨이 있다. 그 선만 잘 가늠하면 된다. 검사법 중에도 X-ray MRI는 이미 일반용어가 되어버린 듯하지만, PET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3.

그 미묘한 표현의 선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바로 언어감각이다. 상대가 알아듣고 이해하는 범위를 재빨리 파악한 뒤, 그에 알맞게 변신할 줄 알아야 한다. 너무 어려워도 안 되고, 너무 쉬워도 별로다. 설명을 잘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에 따라 101가지 다른 방법으로 이해를 시킨다.      


한자가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한자를, 영어가 편한 사람들에게는 영어를 위주로 말하면 된다. 한자권과 영어권이 골고루 섞여 있다면, 비슷하게 비중을 나누거나 아예 한글 위주로 나가야 한다. 상황에 따라 표준말을 살짝 살짝 파괴하면서 언어유희 효과를 노릴 수도 있다.     


4.

욕설이나 비속어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선을 지킨다고 한들, 아직은 듣기 거북해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본인은 애교 섞인 호칭으로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이 기분 나빠하면 대략난감이다. 말하는 사람 의도가 듣는 사람에게도 그대로 전달될 수 있어야 좋은 소통이다.     


유명인이 방송에서 반말을 섞어 쓰거나, 중간 중간 비속어를 날릴 때가 있다. 오래가는 사람은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을 건드리지만, 절대 무례를 범하지는 않는다. 예능인 중에 그 선을 함부로 넘나들다가, 한방에 훅 가버린 사람들이 많다. 자신없으면 공손한 말투를 유지하는 편이 안전하다. 쓸데없는 개그욕심이 언제나 화근이다.     


5.

사람들이 ‘미쳤다’는 말을 흔하게 쓰기 시작한 이유는 영어 조기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영어의 ‘crazy’가 한국말 ‘미쳤다’보다 훨씬 다양하게 쓰이다 보니, 영어에 익숙한 사람들이 그 표현 그대로 한국어 소통에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영어유치원을 다니며 생활영어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큰 거부감이 없지만, 중년이상 세대에게는 아직 그리 자연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회식자리에서 “와, 전무님, 오늘 패션 정말 미쳤어요.”하고서 왜 갑자기 분위기 다운되는지 이해를 못한다면, 언어감각에 대해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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