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르몬닥터 권영구 Aug 23. 2023

@소통잡화점 913 <극단적인 사람과 선긋기>

@소통잡화점 913

<극단적인 사람과 선긋기>     


1. 

“약속시간에 이렇게 늦으면 어떡해, 우리 헤어져.”

한때 유행했던 개그프로그램 컨셉이다. 한 쪽이 사소한 잘못을 저지르면, 다른 쪽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이별을 통보한다. 제대로 사귀거나 이별하거나 딱 둘 중 하나만 존재하는 극단적인 관계다.     


2.

‘사느냐 죽느냐 그 것이 문제로다.’

꼭 살고 죽고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할까. 살거나 죽거나 한 가지만 결정하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가. 죽을 생각 대신 다른 해법을 찾거나, 목숨을 건지더라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말하는 사람은 고르디우스의 매듭 이야기를 너무 가볍게 해석하는 사람이다. 단순명료하게 하나의 잣대만 끌어내어 OX로 결정하게 한다. 마치 검사가 네, 아니오 둘 중 하나로만 답하라고 몰아붙이는 식이다. 세상에 그리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3. 

극단적인 주장은 부족주의의 산물이다. 우리 편인지 적인지 선을 그어놓기만 하면, 사람들은 알아서 이쪽저쪽 나뉘어 서로 싸우기 시작한다. 구태여 그렇게 부딪힐 문제가 아닌데도 사사건건 상대방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만일 어느 날 갑자기 상대편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소멸되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기뻐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또다시 누군가 새로운 극단의 선을 긋고, 동조하는 사람들끼리 편을 나누기 시작한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된다. 한번 극단주의에 빠지면 쉽게 벗어나기 힘들다.     


4.

극단주의는 어디에나 있다. 정치나 종교에만 있는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우리 회사에도, 우리 가정에도, 친구들 사이에도 있다. 한번 정한 기준은 목숨 걸고 지키려 하고, 그 룰을 어기면 고래고래 소리치며 끝까지 응징하려 든다.      


이성적인 소통을 하려면, 이러한 극단주의자들과 선을 그어야 한다. 맹신에 빠진 사람과 합리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우리 편인데도 이런 극단주의자가 있다면, 두 눈 꼭 감고 손절해야 한다. 집단사이 대립이 벌어질 때, 양쪽 극단주의자들을 격리시키고 협상테이블에 앉을 수만 있다면 의외로 합의는 금방이다.     


5.

극단주의를 벗어나는 몇 가지 요령이 있다. 내 편이라도 심하다 싶으면 명확히 지적해야 한다. 상대편 극단주의를 대놓고 비난하면, 졸지에 나도 극단주의자로 보이니 언급자체를 하지 말자. ‘이슬람은 폭력적이다.’처럼 편견 섞인 어설픈 일반화 문장은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 맞다 틀리다 식의 표현은 되도록 줄인다.     


사람들은 극단주의에 쉽게 끌리기 마련이다. 악해서가 아니라 약해서 그렇다. 앞에서는 누구나 손가락질하지만, 돌아서면 은근슬쩍 그 주장에 마음이 쏠린다. 이분법과 흑백논리는 지금처럼 복잡한 시대에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틀렸다와 다르다의 구별을, 남의 문장 트집잡기용으로만 써서는 안 된다.


작가의 이전글 @소통잡화점 912<참 쉬운 소통의 기본원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