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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Aug 30. 2023

@소통잡화점 918 <알권리 VS 알리지 않을 권리>

@소통잡화점 918

<알권리 VS 알리지 않을 권리>     


1.

“듣자하니 작년에 집 샀다며? 말하지 그랬어, 축하해 줬을 텐데.”

약간 애매한 관계의 후배가 아파트 샀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연히 만날 기회에 인사말을 건넸지만 서로 뻘쭘하기만 하다. 괜히 말을 꺼냈다.     


2.

사람과 사람사이 관계에도 등급이 있다. 서로서로 자신의 관점에서 인맥에 라벨을 붙인다. 어제부터 목이 간질간질한데 코로나가 아닐까 하는 말까지 일일이 주고받는 블랙라벨, 한파뉴스에 건강안부를 묻는 골드라벨, 승진이나 자녀 대학합격 같은 이벤트를 주로 전하는 실버라벨, 결혼식 장례식 아니면 연락하기 힘든 브론즈라벨 등이다.     


SNS관계는 좀 독특하다. 어떤 관계는 가족이나 친구보다 더 깊은 속내를 공유하기도 한다. 과연 지인보다 더 가깝다고 느껴서 그렇게 행동하는 걸까. 유럽 여행 중 민박집에서 만난 한국사람들끼리 술자리가 벌어지면, 각자 인생역정을 밑바닥까지 싹 다 털어놓는다. 다시 안볼 사람이기에 부담 없이 솔직해질 수 있다.      


3.

가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서로를 향한 사랑의 작대기가 어긋날 때다. A는 B를 너무도 좋아하여 블랙라벨 1순위에 올려놓았지만, B는 회사에서 알고 지내는 브론즈라벨로 생각하고 있다. A는 B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알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B는 자신만의 개인사를 알리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여긴다.     


A는 B에 대한 서운함이 쌓여가고, B는 A의 관심에 대한 불편함만 늘어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쪽이 폭발해 버리면, 이제 그들은 등급 없는 사이가 된다. 아니, 오히려 남보다 못한 사이다. 무덤덤이 아니라 이제 서로를 원망하고 얄미워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4. 

“모든 일을 꼭 다 알려야 하나요?”

이사를 결정하는 일은 부모판단이지만, 아이에게도 유치원 친구들과 헤어질 준비가 필요하다. 아이도 분명 식구의 한 사람이니 집안 큰일에 대해 당연히 알권리가 있다. 일부러 비밀로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우리 내일 이사간다, 더 크고 넓은 집이야. 오늘 유치원 친구들하고 인사하고 와.”     


회사가 대기업에 흡수 합병된다는 사실을 끝까지 쉬쉬하면 말단직원들은 서운하다. 확정되기 전 대외비 상황이라면 모를까, 내일부터 우리 회사 이름이 바뀐다는 사실을 뉴스로 접하면, 그 심정이 어떨까. 상대의 알권리를 깜박하면, 상대방은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느낀다. 정나미 뚝 떨어진다.     


5.

소통은 서로 간에 예의를 가지고 상대가 궁금할 만한 내용을 전하는 과정이다. 업무적인 내용이든 일신상의 내용이든 다 마찬가지다. 간혹 을이 갑에게 미주알고주알 전하는 말은 당연하게 여기고, 갑은 을에게 입꾹 닫는 사람이 있다. 소통을 을이 갑에게 하는 일방적인 보고행위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살다보면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 생기기도 한다. 좋은 일이라면 이장님 마이크 빌려 동네방네 큰소리로 떠들겠지만, 이런 일은 나 혼자 조용히 감내하며 넘기고 싶을 수도 있다. 3초만 거꾸로 생각해보자. 저 사람이 내게 이런 일을 숨겼어도, 내가 서운해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한 사람 한 사람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각각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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