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르몬닥터 권영구 Sep 15. 2023

@소통잡화점 930 <고쳐 쓰기가 어려운 이유>

@소통잡화점 930

<고쳐 쓰기가 어려운 이유>     


1.

“고객님, 그냥 윈도를 새로 까시죠.”

컴퓨터를 오래 쓰다보면 자잘한 이상증상이 생긴다. 복잡한 설정을 건드려 보기도 하고, 정 안되면 수리기사까지 부르지만 해결이 안 될 때가 많다. 싹 밀고 새로 깔면 간단한데, 있는 그대로를 두고 고치려면 훨씬 어렵다.     


2.

테니스 골프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쌩초보는 3개월만 잘 배우면, 꽤 근사한 폼이 나오기 시작한다. 항상 문제는 혼자 유튜브보고 5년간 독학한 사람이다. 나름의 원칙에 따라 동작이 완성되어 있으니, 어떤 한 부분을 고치면 다른 쪽에서 또 탈이 난다. 인내심이 바닥나면 그제서야 레슨을 포기하고 원래대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잘못된 부분이 생길 때마다 그대로 큰 문제가 생기면 오히려 다행이다. 즉각 보수하고 바로잡으면 그만이다. 운동이든 건강이든 다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자구책이 발동되니 더 어렵다. 동전을 쌓아 올리다 한 쪽이 튀어나올 때, 적당한 곳을 반대쪽으로 밀어내면 전체 균형이 맞아가는 이치다. 눈앞의 급한 불이 꺼진 듯하지만, 더 강력한 시한폭탄이 켜지는 꼴이다.     


3. 

김대리의 비리가 드러날 때 결코 간단한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지금껏 김대리가 그런 행동을 해도 될 만큼 그 윗선과 위의 윗선이 모두 눈감아 주었을 확률이 크다. 이 문제를 바로 잡으려면 김대리 한명만 쫓아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고통스럽더라도 칡넝쿨을 주욱 뽑아내야만 한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대로, 사람들은 좋든 안 좋든 하던 대로 굴러가는 관성의 법칙을 좋아한다. 어디를 고치고 바로잡고 뜯어고치고 하면 영 번거롭다. 모두들 그렇게 납작 엎드려 꼼짝하지 않으려 하니, 문제를 고치기가 어렵다. 기존질서를 인정하며 업그레이드 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4. 

외부에서 CEO, CFO를 초빙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 사람의 뛰어난 능력 외에 기존 인맥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장점 때문이다. 내부에서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모두 관계가 꼬여 있으니, ‘우리가 남이가’ 하면 말문이 막혀 버린다. “제 뜻이 아니라 히딩크 감독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시네요.” 그 정도가 되어야 가능하다.     


모든 감독의 꿈은 똑같다. 유소년 축구팀을 맡아 자신이 키운 선수로 성인 팀을 만드는 작업이다. 그야말로 자기 입맛에 맞게 완벽한 빌드업을 해내는 과정이다. 그런 기회는 절대 흔하지 않다. 대부분의 개인은 기존 조직에 들어가, 자신을 증명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고쳐 쓰는 법이 중요한 이유다.     


5. 

재건축대신 리모델링을 하기로 결정하면, 일단 분류작업부터 해야 한다. 남겨야 할 부분과 새로 바꿔야 할 부분을 결정하는 일이다. 남겨야 할 부분을 부수어도 안 되고, 당장 내다 버려야 할 부분을 꼭 끌어안고 지키려 해도 안 된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훨씬 중요한 작업이 남는다. 딱 바꿔버리면 속이 시원하겠는데, 구조에 문제가 생길 듯하여 그냥 내버려 두는 부분에 대한 판단이다. 고치자니 시간과 돈이 너무 들어 이익이 없는 경우도 있고, 도저히 뜯어낼 방법이 없을 때도 있다. 별 수 없다, 견뎌야 한다. 마음에 안 들어도 내버려두고 인내해야 한다. 사람을 고쳐 쓰기 힘들다고 하는 이유도, 그 인내해야 할 부분을 잘 못 참아서다.


작가의 이전글 @소통잡화점 929 <실은 주위사람들이 당신을 엄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