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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Sep 19. 2023

@소통잡화점 932 <의무감과 책임감 딱 2% 차이>

@소통잡화점 932

<의무감과 책임감 딱 2% 차이>     


1.

“저도 똑같이 휴일에 나와서 사무실 짐정리 다 했는데, 왜 김대리만 칭찬해 주시나요?“

/“그래요, 이대리도 수고 많았어요. 김대리는 전기 콘센트 고장 난 부분 발견하고는, 영선반에 사정사정해서 끝까지 고쳤으니 더 고맙다고 한거죠.”     


2.

사실 이대리나 김대리나 고생한 시간은 별 차이 안 난다. 김대리가 겨우 30분 남짓 더 늦게 갔을 뿐이다. 그 시간의 객관적 수치가 전부는 아니다. 의무감은 시간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면에 숨어있는 책임감은 절대 단순하게 말할 수 없다.     


물론 이대리도 자발적으로 휴일을 반납하고 기꺼이 사무실 정리에 뛰어 들었다. 수당이 문제가 아니다. 피같은 주말을 기꺼이 희생하는 그 마음은 높이 사야 한다. 나 자신의 이익보다 전체를 위한 통 큰 결단을 내렸다. 나머지 직원들은 그렇게 까지는 못하겠다고 버텼으니, 팀장님 입장에서 엄청 고맙게 느껴진다.     


3.

김대리는 딱 2%가 달랐다. 사무실 이전한 뒤 짐정리를 하기로 했으니, 그 일만 해도 충분했다. 툭툭 먼지 털고 집에 갈 준비하는 이대리와 달리, 김대리는 여기저기 컴퓨터 전원을 켜보기 시작했다. 앗, 3번 컴퓨터에 전원이 안 들어온다. 이 라인 전기배선에 문제가 있나 보다.     


이대로 집에 가면 내일 이 자리에 앉는 사람은 업무를 할 수가 없겠다. 휴일이지만 영선반 당직선생님께 전화를 건다. 온갖 아양을 떨고 커피대접까지 해가며, 기어이 전기수리를 마치고야 만다. 사실 김대리 본인은 그 일을 떠벌리지도 않았다. 다음날 영선반 담당자가 팀장님에게 뭐 이런 직원이 다 있느냐며, 푸념 섞인 칭찬을 하시는 바람에 여기저기 알려졌다.     


4. 

그 미세한 차이가 바로 책임감이다. 판단의 기준을 나로 정하면, 내가 맡은 일을 다 했나 못 했나 만 신경 쓴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사다리 놓고 올라가 더 넓은 시야로 우리 팀 전체를 훑어본다. 내 일은 끝냈지만 박대리 최대리 일이 아직 안 끝났으면, 어차피 우리 팀 일은 마무리가 안 된다.     


김대리가 다른 직원을 안 챙긴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능력 있는 사람이 자기 일 재빨리 끝냈으면, 얼른 집에 가 발닦고 편하게 넷플릭스 보면 그만이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의 행동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아주 사소한 일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5. 

가정이나 회사에서 우리가 맡은 미션에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모두 필요하다. 밤잠 못자고 남들처럼 의무감 98%를 수행해도, 나머지 2% 책임감이 없으면 상대는 진한 아쉬움을 느낀다. 어느 환자분이 다짜고짜 한약을 쓰겠다고 찾아오셨다. 진찰해보니 큰병원가서 검사를 해야 할 위중한 상태로 판단된다.      


“제가 치료할 병이 아닙니다, 얼른 큰 병원에 가세요.”     


“지금 한방은 고사하고 꼭 큰병원가서 진찰부터 받으셔야 해요. 제가 진찰한 내용  소견서에 적었고 여기 진료의뢰서까지 드릴테니, 오늘 꼭 대학병원에 가셔요.”

안 해도 되는 일은 돈이 안 생기고, 박수를 받지도 못한다. 그래도 한다. 책임을 다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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