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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Sep 26. 2023

@소통잡화점 937 <상대의 숨은 속내를 읽는 법>

@소통잡화점 937

<상대의 숨은 속내를 읽는 법>     


1.

A “○○병이 있는데, 상담이나 좀 받아보려구요.”

B “○○병으로 상담부터 좀 받으려구요.”     


비슷해 보이는 이 두 문장에는 큰 차이가 있다. 실장님께 A환자분은 몇 가지 상담만 해드리면 되겠고, B환자분은 정식 진료를 준비하시라고 했다. 왜 그렇게 판단하는지 궁금해 하신다.      


2.

“어머, 원장님 말씀이 맞았어요. 정말 환자 두 분이 딱 그렇게 하셨네요.”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포인트는 조사에 있었다. ‘상담이나’ 받으러 오시는 분은 처음부터 별 기대 없이, 소위 간을 보겠다는 경우가 많다. ‘상담부터’ 받으려는 분은 원장의 판단과 지시에 적극 따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처음부터 두 종류를 구분하지는 않았다. 누구든 나를 찾아오시기만 하면 이 환자분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샅샅이 분석해드렸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말든, 진료비 결제하고 한약을 쓰시든 말든, 아무 상관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3분짜리 단순정보를 원하는 환자 분은, 과잉친절이 오히려 불편하시겠구나 깨달은 뒤 전략을 바꾸었다.     


3. 

“원장님, ○○병으로 진료하러 오셨어요.”

/“환자분이 정확히 어떻게 말씀하셨나요?”

실장님이 환자분에 대해 보고하시면, 나는 꼭 다시 질문을 던진다. 가급적 환자분의 표현 그대로를, 직접화법으로 인용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키가 너무 안 커서 왔어요. 보약 쓰면 좀 나을까 싶어서요…… 라고 하셨습니다.”

OK. 전략이 나왔다. 성장은 몸이 허약해서가 아니라 어떤 건강이상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부터 자세히 설명 드려야 겠다. 막연한 보약은 도움이 안 되며, 비염과 저체중 문제부터 해결해야 성장상태가 좋아진다고 알려드렸다. 그동안 여러 방법을 쓰고도 왜 키가 안크는지 이제야 알았다며 환하게 웃으신다.     


4.

사람은 누구나 속내를 감추고 싶어 한다. 내 욕심이나 의도를 들키면, 괜히 기싸움에서 밀린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본심을 꽁꽁 숨긴다. 완벽한 포커페이스는 그리 흔치 않다. 말이든 글이든 행동이든 표정이든 어느 한구석 중요한 단서를 꼭 흘리기 마련이다.      


그 미묘한 단서를 얼마나 잘 캐치하느냐에 따라 소통의 주도권이 결정된다. 상대가 대화중 시계를 흘깃 쳐다본다면, 시간 약속이 있거나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른 약속이 없다고 하면, 내 이야기는 그쯤에서 끊어야 한다. 새로운 관점으로 대화를 시도하든, 다른 이야기를 꺼내든 해야 한다. 상대 반응이 시큰둥하다고 했던 말을 무한 반복해봐야 소용없다.     


5.

이 상황을 통째로 뒤집어 보자. 내가 남에게 할 말이 있을 때, 첫 문장으로 내 의도를 정확히 밝혀 버리면 어떨까. 상대는 밀고 당기며 한참동안 신경전 벌일 준비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내 기습공격을 받으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린다. 어버버하다가 내 말대로 거의 따르게 되어 있다.     


“휴일인데 집안일 많이 밀렸네. 당신 허리 아프니까 재활용 소파는 내가 갖다 버릴게. 대신 관리사무소에서 스티커는 당신이 좀 받아주고, 다녀오는 길에 나 맥주하고 땅콩 좀 부탁해.” 

왠지 이러면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어느새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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