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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Oct 03. 2023

@소통잡화점 942<열심히 해본 기억으로 살다>

@소통잡화점 942

<열심해 해본 기억으로 살다>     


1.

“공부 열심히 한 친구를 가르쳐 보니, 확실히 빨리 배우더라고요.”

유명 셰프가 어느 방송에서 털어놓은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요리는 학력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분야가 아닌 듯한데, 이런 말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2.

장항준감독의 말을 들으니 이해가 간다. “방송국 PD를 뽑을 때 왜 서울대 연고대 출신만 뽑는지 궁금했어요. 국영수 잘하는 능력과 방송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렇게 할까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아, 밤잠 안자고 열심히 공부해 봤던 사람이라서 뽑았구나.”     


오은영박사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 수학점수 기억하세요? 한번 지나간 성적은 본인도 잘 몰라요. 그 당시에는 1점이라도 더 받으려고 아등바등했는데 말이죠. 대신 그때 졸음을 참으며 새벽까지 공부한 경험은 생생해요. 그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가요.”     


3.

“이 과목은 좋아하는 과목이 아니라서 대충 공부했어요.” 한의대에서 강의할 때도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학생들이지만, 사람마다 능력과 성실성은 제각각이다. F학점을 받을 위기에 처한 그 학생에게 묻는다. “이 과목을 안 좋아했다면, 그럼 다른 과목 성적은 괜찮은가요?”     


한의대 강의를 10년 넘게 했지만 어느 한과목만 유독 잘하거나 못하는 학생은 한 번도 못 봤다. 내 과목이 F 위기면 다른 과목도 거의 D학점 근처다. 학교생활 전체를 나태하게 보내고는, 자기변명만 잔뜩 늘어놓는다. 취향이 아니라고 말하려면, 다른 무엇을 열심히 했는지 증명해야 한다. 성실성을 보여줄 기회는 아주 많다.

     

4. 

“공부 열심히 해보려고 했는데, 능력이 부족해서 안 되던데요.” 그럼 공부외 다른 어떤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해 본 적이 있는가. 정말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할 만큼, 최선을 다해보기는 했는가. 다른 분야에 그만한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보기는 했는가. 혹시 해보지도 않고 안할 핑계거리부터 찾지는 않았는가.     


대학을 졸업하고 어떤 직장을 다니든, 매순간 능력의 한계를 실감한다. 상사에게 매일 깨지고 혼나다보면, ‘정말 내 머리가 나쁜가?’ 스스로 회의에 빠질 정도다. 그렇게 짜증스럽고 답답한 나날이 이어지면, 다른 직장으로 옮길 마음을 먹는다. 누구나 예상하듯이 다른 직장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한번 포기의 단맛을 맛본 사람은, 웬만해서는 쓰디 쓴 끈기를 선택하려 들지 않는다.     


5.

다른 이유들도 마찬가지다. 재미를 못 느끼고 지겨워서 안 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고, 체력이 부족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노는 게 제일 좋아서 친구들 모이라고 했더니’ 언제나 즐겁기만 할뿐 성과를 거두지 못한 사람도 많다.     


어느 분야든 넘사벽 엄청난 능력자들만 드글드글한 경우는 없다. 태반은 은근과 끈기로 버티며, 자기와의 싸움에서 끝내 승리한 사람들이다. 남보다 센스가 모자라고 창의력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열심히 하며 버티다 보면 2등까지는 거뜬히 올라간다. 남에게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이유에 대해 열변을 토하더라도, 본인만은 스스로를 너무도 잘 안다. 자신이 없어서 하기가 싫어서 용기가 없어서, 포기만 반복했던 과거의 행적은 늘 나의 자존감을 갉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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