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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Oct 12. 2023

@소통잡화점 949 <상대의 말이 길어질 때 대처법>

@소통잡화점 949

<상대의 말이 길어질 때 대처법>  

   

1.

“제가 30년 전에 이런 수술을 받았고, 17년 전에는 저런 수술까지 받았거든요. 지금 밥만 먹으면 계속 더부룩하고~”

이런 전화를 받으면 실장님이 무척 당황하신다. 애매한 상황에 대한 전화응대 방법을 수시로 가르쳐 드리지만, 항상 그 한계를 넘는 분이 나타난다. 딱 2가지 원칙만 강조 드린다.     


2.

첫 번째, 상대방이 전화한 목적을 간파하라. 실장님이 의료인도 아니신데, 전화로 원격진료 하려는 듯 상대가 몸 상태를 설명했을 리는 없다. 아무래도 단순 하소연일 가능성이 많다. 내원하셔서 원장인 나에게 말씀하시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들어드리지만, 업무 중 전화를 걸어 실장님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아무 답도 드릴 수 없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는 분은, 본인이 전화를 걸기로 작정한 그 이유마저 잊어 버린다. 신나게 한풀이로 시작하셨는데 이 대화를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감당도 못하신다. 결국 했던 말 또 하시고 또또 하시고 도돌이표 통화만 이어진다. 거품을 싹 걷어내고 제일 밑바닥에 숨어있는 처음의 그 목적을 찾아내야 한다.      

3. 

도리가 없다. 상대방 대화가 끊어지길 기다렸다간 한도 끝도 없다. 노래방에 같이 간 부장님처럼, 한번 마이크를 잡으면 절대 내려놓을 줄 모른다. 큰 맘 먹고 중간에 치고 들어가 마이크를 뺏아야 한다. 남의 말 자르는 연습이 안 된 착한 분들은, 차마 저지르기 힘든 만행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아, 됐어요. 그만 하세요.”하면 정말 대판 싸움이 난다. 기술적인 해결책이 있다. 한 뭉치의 대화주제는 파악이 되었는데 하자세월의 기미가 보인다면, “아, 큰 수술 여러 번 하시는 바람에 몸이 안 좋다는 말씀이군요. 제가 어떤 부분을 도와드리면 좋을까요? 진료예약을 잡아드릴까요?” 그 앞부분을 간단히 요약처리하고, 내 질문을 연결시키는 방법이다. 기습공격으로 갑자기 말이 잘렸지만, 상대가 그다지 기분 나빠 하지 않는다.     


4. 

두 번째, 나를 지키자. 가끔 어려운 전화가 걸려오면, 실장님이 도중에 전화를 한번 끊은 뒤 중간보고를 하실 때가 있다. 상황을 전해들은 뒤 내가 직접 통화한다. 원장에게 까지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드물고, 웬만한 궁금증은 원장이 바로바로 해결해 드릴 수 있으니 편리하다. 곤란한 경우가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언제든 원장실로 토스하시라고 당부 드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억지를 부리거나 말을 함부로 하는 분들이 가끔 나온다.     


“그러면, 그냥 정중하게 전화를 끊으세요.”

아무래도 실장님은 원장과 환자사이에 끼인 사람이라는 생각에, 환자에게 단정적인 말을 하기 어려우실 수 있다. 내가 항상 고수하는 고객응대 제 1원칙이 있다. 우리 식구의 보호가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 환자분에 대한 봉사정신이다. 실장님이나 내 가슴속에서 보글보글 물이 끓기 시작하면, 무조건 환자분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기분 나빠하며 진료를 포기하셔도 상관없다.      


5.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조리 있게 잘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분은 백번 이해한다. 주위에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하소연하고 싶은 그 마음도 이해한다. 비용문제가 걱정되어 어렵게 말을 꺼내는 그 마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본인 몸 안 좋다고 우리 식구들 마음을 상하게 하는 행동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얼마전 대학병원 가셔야 할 분이 엉뚱하게 우리 한의원에 오셨다. 앞으로 어떻게 치료하셔야 하는지 45분간 잘 설명하고 보내 드렸다. 또 한번은 어떤 중년남성 한분이 KTX타고 아침일찍 올라오신 적이 있다. 실장님이 접수 하시면서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는지 여쭤보자, “네가 의사야? 내가 말하면 알아?”. 보고를 받은 뒤 진료실에서 단 3초 만에 대학병원으로 가시도록 했다. 함부로 진료를 거부할 수는 없으니, 대안을 안내드리며 최대한 우아하게 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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