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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Oct 17. 2023

@소통잡화점 952 <애매한 인간관계 허들로 감별하는~

@소통잡화점 952

<애매한 인간관계 허들로 감별하는 법>     


1.

“어휴, 김대리는 첫인상부터 너무 차가워서 말 붙이기도 힘들어요.”

타인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이 있다. 한마디로 ‘진입장벽’이 높은 사람이다. 가까이 다가서기 어렵고,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 지도 쉽사리 판단이 안 된다. 장벽을 치는 사람은 나름의 이유가 있으며, 때로는 허들이 인간관계 감별사 역할을 하기도 한다.     


2.

방어막을 강하게 둘러친 사람은, 그만큼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껍질을 단단하게 만들어, 부드러운 속살을 지키려는 자구책을 가동하는 중이다. 흔히 말하는 ‘방어기제’가 여기 속한다. 상처받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또다시 그런 힘든 과정을 겪기 싫으니, 아예 관계를 맺지 않고 고립되기로 결정한 상태다.     


대신 누군가 진심어린 관심으로 그에게 한발 한발 다가서면, 어느 순간 신세계가 열린다. 그 사람도 실은 누구라도 그 성벽을 부수고 들어와, 자신을 꼬옥 안아주길 기대하는 중이다. 겉으로는 차갑고 냉정해 보이지만, 성벽 안에서 혼자 외로워하며 흐느끼는 사람이다.      


3.

그와 반대인 사람도 있다. 항상 미소를 띠며 모두에게 친절한 이대리. 처음에는 다들 그에게 호감을 갖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관계가 딱 그 수준에 머무른다. 아무 장벽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한발 다가가면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딱 그만큼 멀어진다.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남들이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가깝게 느끼지도 않는다.     


이 역시 자신을 방어하는 다른 유형의 장벽이다. 일명 허허실실 전법이다. 겉으로 허술해 보이니 아무도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어, 적대적인 감정을 갖지 않도록 한다. 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남에게 공격받을 확률도 줄일 수 있다. 유머와 아재개그를 심하게 즐기는 사람도 이 유형일 가능성이 있다. 대신 그 이상의 접근은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적의 호의일 뿐, 상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은 생각은 없다.     


4. 

이런 두 가지 종류의 장벽은 결국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에 속한다. 누구든 주위에 장벽을 설치한 느낌이 들면,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 아직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니, 다독이고 배려해주면 좋다. 왜 그렇게 마음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느냐며 화를 내거나 성질부려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가끔은 이런 불편한 허들을 역으로 이용해 보면 좋다.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과연 누가 진정한 내 사람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진시황이 죽은 뒤 실권을 잡은 환관 조고는, 허수아비 황제를 즉위시킨다. 어느 날 신하들을 감별하기 위해 쇼 한판을 벌인다. 황제에게 사슴 한 마리를 바치며, 좋은 말을 올린다고 말한다. 황제가 당황하여 신하들에게 묻기 시작한다. 황제말대로 사슴이 맞다고 말한 신하는 블랙리스트에 올려 기어이 죽였다.     


5.

결혼식이나 장례식처럼 특별한 일이 생기면, 어떤 식으로든 서로서로 인간관계 재조정이 일어난다. 언제 적 인연인데 지금 이런 경조사까지 알리느냐며 분개한다. 내가 부조한 사람이 내 알림을 ‘읽씹’하면 마음 깊은 곳부터 분노가 용솟음친다. 카톡 차단하고 손절에 들어간다.      


사람사이 관계는 절대 겉으로는 알 수 없다. 오래된 관계일수록 가벼운 부탁을 하면서 허들을 단계별로 놓아보면 좋다. ‘이 사람하고 나는 이 정도 부탁까지는 주고받는 관계구나.’ 미리 파악할 수 있다면 오해는 하지 않는다. 나 혼자 짝사랑에 빠져 전부 다 퍼주고는, 어느 순간 상대가 나에게 손끝하나 까딱하지 않으면 배신감을 느낀다. 모두 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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