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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Oct 18. 2023

@소통잡화점 953 <내 취향만 고집하는 사람>

@소통잡화점 953

<내 취향만 고집하는 사람>     


1.

“저는 핑크가 제일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동의하시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아무튼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언뜻 당당한 모습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자기만의 취향을 가지고 사는 모습은 멋져 보이지만, 눈앞의 그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대놓고 하는 상황이라면, 고집스런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2.

핑크색을 좋아하는 김대리가 있다. 옷이나 양말 볼펜 커튼까지 모두 핑크색으로 깔맞춤을 하고 산다. 본인 취향이니 아무도 뭐라고 말할 수 없다. 업무에 지장이 있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니 할 말이 없다. 사실 이런 개성은 자신만의 특권이니 진작부터 서로 존중했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 상황이 벌어진다. 디자이너인 김대리는 기획 단계부터 모든 제품 디자인에 핑크만을 주장하고 나선다. 핑크처럼 완벽한 색상이 또 어디있느냐고 말한다. 세상 사람모두 핑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냐고 말한다. 이렇게 좋은 색상을 놔두고 왜 블루나 그린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한 표정까지 짓는다.      


3.

자신의 취향에만 너무 오랫동안 빠져들면, 어느새 절대적 진리로 착각하는 단계까지 넘어갈 수 있다. 여러 색상중 나는 핑크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는 대신, 핑크는 모든 컬러의 왕이라며 맹목적으로 찬양하기 시작한다. 남에게도 핑크를 강요하고, 다른 색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손가락질도 서슴지 않는다.     


핑크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여 동호회를 만들고, 끼리끼리만 모임을 갖는다. 이 대단한 색상을 알아보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긴다. 본인이 핑크를 그렇게나 좋아하면서도, 다른 사람은 블랙이나 옐로를 목숨 걸고 좋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4.

취향을 남에게 투사하면 고집이 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취향은 독단이 되고, 강압의 형태로 드러난다. 김대리가 팀장이 되면 어느 순간 팀원들은 박수부대가 된다. “팀장님 안목이 정말 대단하세요, 어떻게 이 제품에 핑크를 넣을 생각을 다 하셨어요, 엄지척!” 그러다 팀장님과 이별하는 바로 그 순간, 향후 3년 동안 팀장은 팀원들의 술자리 안주신세다.     


본인이 계속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냉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정말 합리적으로 옳은 결정인가, 아니면 나만의 개인적 취향인가. 대학에서 서클활동조차 활발하지 않은 요즘 시대를 감안하면, 주위에 본인의견을 물어볼 기회조차 흔치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확신이 점점 강화되어 이 지경에 이르렀다.

     

5.

취향은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한명 한명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소중한 존재다. 남들이 아무리 점심메뉴를 돼지불백으로 통일하자고 말해도, 손 번쩍 들고 김치찌개를 먹을 자유가 있다. 그 정도 취향도 없는 무색무취 상태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르는 행동이 미덕인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     


대신 취향은 나 혼자만의 특권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세상사람 모두 나처럼 각자의 취향이 있다는 사실도 반드시 기억하자. 부모나 상급자처럼 권력을 가진 갑은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취향에 대한 정보가 드러나는 그 자체로, 주위사람에게는 엄청난 파급력이 생긴다. 아무리 본인이 원치 않아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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