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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Oct 20. 2023

@소통잡화점 955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함부로~

@소통잡화점 955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     


1.

“어제 김대리 당직근무 하다가 집에 가버렸다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맞아, 맞아(웅성웅성).”


아무도 김대리가 회사에서 왜 뛰쳐 나갔는지 그 이유는 알지 못한다. 심지어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팀장이 긴급 공지를 전달한다. 어젯밤 김대리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 가셨는데, 밤샘 수술 끝에 돌아가셨다는 비보다.     


2.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다들 너무 잘 아는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너무너무 이기적이다. 본인이 늦잠자고 지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13가지 이유를 줄줄이 대면서 선처를 바란다.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다 다른 사람이 지각했다는 말을 들으면, 순간 표정이 싸늘하게 변한다. 일단 팔짱을 끼고 짝다리부터 짚는다. 평소 그 사람 행동을 유심히 지켜 보았는데, 진작부터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고 말한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지 안봐도 비디오라며 흉까지 보기 시작한다.     


3. 

한 가지 의문이 있다. 매일 지각하던 김대리가 오늘 또 늦으면 인성 탓으로 몰아가도 괜찮은가. 항상 30분 일찍 출근해 사무실 청소까지 도맡아하던 이대리가 오늘 늦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하는가. 개인행동과 성격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행동심리학에서 조차, 개인차는 구체적인 행동에 대해 그리 믿을만한 예측정보를 주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즉, 과거는 과거일 뿐 지금 눈앞의 일과는 별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매일 3분, 7분씩 얄밉게 지각하던 김대리라 하더라도, 오늘은 정말 지하철이 고장 났을 수 있다. 항상 성실한 이대리지만 어젯밤 늦게까지 게임하고 피곤하여, 오늘 아침에 일부러 30분 늦게 일어났을 수도 있다. 사실관계 파악과 그에 대한 2차 평결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4.

구체적인 판단은 항상 상황분석이 다 끝난 이후로 미루어야 한다. 몇 가지 키워드만 띄엄띄엄 듣고서, 머릿속으로 대충 스토리를 완성해버리면 말도 안 되는 결론밖에 안 나온다. 바쁘다는 핑계로 포털의 자극적인 제목 뽑기에 그대로 당하면, 나도 모르게 엉뚱한 사람 마녀사냥에 동참하기 쉽다.      


우리 업계나 내 식구의 일이라도 마찬가지다. 심정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감싸 안으려는 자세는 당연하다. 다만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판단만은 정확히 해야 한다. 정말 불가피하게 벌어진 일인지, 아니면 술 마시고 핸드폰게임하며 꾸벅꾸벅 졸다가 생긴 일인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앞뒤 살피지도 않고 무조건 우리 편이 옳다고 쉴드치면 곤란하다.     


5. 

상황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고, 사람의 마음은 의외로 약하다. 평소 처신이 그 사람에게 이득이 되기도 하고 가중처벌의 빌미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항상 핵심은 주어진 상황이다.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여 최대한 생생하게 그 순간을 머릿속으로 재현시켜야 한다. 상황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그 이후의 판단과 대책은 적절한 수위를 정해 따르면 좋다.      


“아무리 상황이 안 좋았다 해도, 그런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네요.”

그 어떤 상황이든 말로 들으면 다 쉬워 보인다. 말만으로 현장의 긴박함과 분위기까지 100% 알 수 있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오만이다. 내가 그 상황에 직접 처해보지 않은 이상, 그 사람의 마음을 똑같이 헤아리기 힘들다. 그 와중에 내 마음속 편향에 흔들려 무조건 감싸거나 비난하려 들기 시작하면, 진실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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