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르몬닥터 권영구 Nov 15. 2023

@소통잡화점 973 <내가 말한 뒤에도 상대가 침묵~

@소통잡화점 973

<내가 말한 뒤에도 상대가 침묵한다면>     


1.

“사람이 말을 하면 대꾸를 해야지, 그냥 가만있으면 어떡해.”

중2 자녀가 있는 집에서 흔한 광경이다. 시크하고 차가운 이미지의 신입사원이 있는 사무실에서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먼저 말을 꺼냈지만 상대가 아무 대꾸를 하지 않는 3가지 이유가 있다.     


2.

첫 번째, 그 주제가 별로다. 팀장님 전무님 구내식당에서 만나 다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다. 다이어트 핑계로 도망칠 타이밍마저 놓쳤다. 고개 처박고 묵묵히 밥만 먹는다. 그 와중에 두 분은 정치이야기, 회사 내 라인이야기에 열을 올리신다. 가뜩이나 불편한 자리에, 대화내용마저 극혐이다. 의례적인 맞장구조차 치고 싶지 않다.     


강팀장님이 떴다. 이 분은 구내식당에 혼자 내려오셔도, 순식간에 10명이 들러붙는다. 신입부터 중역까지 모두 같이 밥먹으며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신입사원에게는 야구와 휴가이야기, 동료에게는 건강이야기, 상급자에게는 골프이야기를 소재로 꺼낸다.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으며 식사시간이 너무도 화기애애하다. 내 이야기에 상대가 너무 반응이 없으면 일단 대화소재부터 바꿔보자.     


3.

두 번째, 당신이 별로다. 생각지도 못한 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을 수 있다. 어떤 이유로 상대방이 당신에게 악감정을 가진 상태일 수도 있다. 여러 이유로 상대는 당신과 별로 말 섞고 싶지 않다. 솔직히 얼굴 마주보고 앉아있는 자체도 고역하다. 당신은 상대가 편하지만 상대는 당신이 어렵거나 얄밉다.     


일단 상황분석부터 정확히 하자. 대화를 서둘러 끝낸 뒤 눈치를 살핀다. 저녁식사내내 와이프가 내 말에 대꾸 한마디를 안하다가, 아들이 말을 걸자 활짝 웃으며 10분째 이야기중이다. 이쯤 되면 내 문제가 확실하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숨겨둔 비상금이 발각되지는 않았는지 뇌세포를 총동원해야 한다.     


4. 

세 번째, 말 자체를 하고 싶지 않다. 대화주제를 바꿔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어떻게 지내는 지도 살펴보았다. 시종일관 돌하루방 모드다. 몸이 안 좋든 근심걱정이 있든, 별로 입을 열 기분이 아닌가 보다. 동굴 속으로 숨어 들어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상처를 치유하는 중이다. 이럴 때는 억지로 건드리지 말고 가만 내버려두어야 한다.     


말을 주고받으며 소통하면, 나를 드러내고 상대를 받아들이는 동기화가 시작된다. 상대방이 하는 말에 집중하며 들어야 하고, 내 말에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 지도 잘 살펴야 한다. 컨디션이 안 좋고 피곤하거나, 마음이 우울하고 힘들다면 일상적인 대화자체도 큰 부담이다. 상대에게 본인 상황을 밝히고 정중하게 자리를 피하는 편이 낫다.     


5. 

“저는 내향적인 성격이라서 남들 말에 별로 대꾸를 안해요.”

성격과 대화법은 아무 상관이 없다. 어떤 사람은 1년 365일 내내 남이 무슨 말을 하든 말든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계속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무관심하다. 인간유형의 특징이 아니다. 그저 무례하고 예의 없는 행동이다. 그렇게 남신경 안쓰는 사람이, 본인 말 꺼낼 때 남들이 가만히 있으면 꼭 길길이 날뛰며 화낸다.   

  

리액션이 그리 엄청난 고급기술은 아니다. 개그맨 정성호가 퇴근하자 와이프가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낮에 옆집 은숙이 엄마가 분리수거 제대로 안한다고 잔소리 했단다. 잘 들었고 상황파악도 끝냈다. 와이프 잘못이니 그 정도 말은 들을 만 했네. 겨우 한다는 소리가 “그러게 내가 평소에 잘 좀 하라고 했지!” 정성호는 다르다. “왜 그 아줌마는 분리수거 안했다고 뭐라고 하는 거야! (큰 소리로)” 밑줄 좍 돼지꼬리 땡야, 시험에 꼭 나온다.


작가의 이전글 @소통잡화점 972 <후회는 과거지향적, 반성은 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