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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Nov 23. 2023

@소통잡화점 979 <말 잘하는 법>

@소통잡화점 979

<말 잘하는 법>     


1.

“그 사람 말은 참 잘하더라.”

칭찬처럼 들리는가. 말을 조리 있게 잘 한다는 칭찬을 하고 싶었다면 이런 표현은 부적절하다. 이 대사가 어울리는 상황은 시골장터의 다음 장면이다. “이 약 한 번 잡솨봐.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들을 내용은 없었지만, 대사를 쏟아내는 랩기술 하나는 대단하다는 의미다.     


2.

말하기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잘’의 기준부터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다. 사이비 약장수를 목표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롤모델부터 제대로 정해야 한다. 좋은 예가 있다. 바로 영어 말하기에 대한 테스트실험이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누군가의 영어 연설을 들려준 뒤, 어떻게 판단하는지 물어보았다.      


보통의 한국인들 평가는 비슷했다. 촌스럽게 들린다, 발음이 딱딱 끊어지는 식민지 발음이다, 우리 아이는 저 수준보다는 잘했으면 좋겠다, 점수는 40점 밖에 못 주겠다……. 하나같이 냉정하고 야박하다. 반면 미국인과 원어민 대학강사의 평가는 전혀 다르다. 높은 수준의 단어를 썼다, 문장구조나 내용이 분명히 잘 전달되었다, 거의 100점에 가깝다……. 같은 사람의 영어를 이리도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3.

비밀의 주인공은 반기문 전UN 사무총장이었다. 대사직 수락연설이니 문장전체를 본인이 직접 작성하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공식적인 영어연설에 대해서조차 한국인 대부분은 부정적으로 판단했다. 왜 그랬는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한국인은 혀가 굴러가고, ‘r’ 발음이 희한하게 구사되어야 영어를 잘한다고 느낀다. 입에서 버터냄새가 풀풀 풍기지 않으면, 우리 아이 영어교사로 불합격 판정을 내린다.     


그럼 현지인과 영어교육을 직업으로 삼는 분들은 왜 좋게 평가했을까. “대화능력과 의사전달 능력이 가장 중요하죠. 말 자체가 유창한지 여부는 보너스입니다.” 한마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가 하는 언어 자체의 목적이 핵심이라는 뜻이다.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그들 역시 한국인들처럼 시골 약장수가 한국말을 잘 한다고 판단하지 않았을 뿐이다.     


4.

말을 하는 행위 자체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발음, 발성, 제스처, 표정, 말투, 속도까지 매우 많은 부분을 신경 써야 한다. 이 모든 관점은 결국 말하기의 기술적 차원에 해당한다. 기술은 포장이다. 내용물을 더 멋지게 만들어주는 장식인 셈이다. 물론 포장자체를 예술의 경지까지 승화시킬 수도 있겠지만, 포장이 내용물을 대신할 수는 없다.     


“말하기가 너무 약해요.”

발음과 발성법만 배우면 외국어 쏼라쏼라하듯 유창하게 말할 수 있을까. 듣는 사람이 온 신경을 집중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그의 비결은 결코 기술적인 탁월함이 아니다. 말하려는 내용의 논리성, 독창적인 견해, 신선한 인사이트가 핵심이다.      


5. 

말을 잘 못하고 글쓰기가 어렵다는 사람은, 기술적인 훈련보다 생각부터 다시 정리해 보면 좋다. 지금 이 주제를 말이나 글로 표현할 때, 어떻게 전해야 단순명료하고 깔끔할지 고민부터 해보자. 그런 사고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지금 방금 본 영화 줄거리를 말해보라고 해도 30초 넘기기가 힘들다.      


소통은 매순간 새로운 연설문을 작성하는 과정이다. 방금 상대방이 한 말을 토대로, 나의 입장을 정리하여 말로 꺼내야 한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팽팽 돌아간다. 상대방 말의 핵심은 저 내용이었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은 그러하니, 이런 식으로 말하면 되겠다는 과정을 거친다. 글쓰기는 써놓고 고칠 시간이라도 있지만, 소통의 말은 순간순간 받아쳐야 하므로 훨씬 어렵기는 하다. 오죽하면 동문서답대신 묻는 말에 알맞는 대답만 해주어도 소원이 없겠다는 하소연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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