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게 꼭 해야 할 말은 따로 정해져 있다.

속터지는 오늘 하루, 내일은 소통한방013

by 호르몬닥터 권영구



"내과하고 정형외과에서도 괜찮다고 했는데, 큰병원에 또 가라구요?"

저희 한의원 환자분 S님이 단단히 삐치셨네요. 제가 진찰해보고 한의원 치료하기보다는 큰병원 진찰부터 받으라고 말씀드렸더니 노발대발이십니다.


물론 의료진마다 진단에 대한 관점이나 치료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저의 생각이 더 우수하고 다른 의사나 한의사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오만한 생각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럼 제가 이 S님에게 한사코 큰병원 진료를 다시 받으라고 권해드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답은 의사와의 소통법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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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문직종이 마찬가지겠지만, 일반인과 전문인은 그 분야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의 종류와 깊이가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전문인의 지식은 주로 직업적인 정보들의 모음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으므로, 책에 나오는 표현이 머리속에 강하게 박히기 마련입니다.


한마디로 '학교때 시험문제와 답으로 공부한 단어와 문장'이 그 전문인의 중요한 판단기준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학교의 교수님들도 꼭 알아야 할 내용위주로 시험에 내실테니까요.


그런데 제가 주변의 여러 분야 전문인들을 오랫동안 살펴본 결과 특이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각 직업별로 쓰이는 고유한 단어가 따로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인이 잘 모르는 희한한 용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흔히 쓰는 단어중에 유독 어떤 표현이 '전문적'으로 중요하게 쓰이니 골치가 아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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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웬만한 의료진에게 '몸에 열이 많아요' 하는 것과, '얼굴이 화끈거려요'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치료로 이어집니다. 물론 담당의료진이 환자의 모호한 표현을 좀 더 정확히 물으면서 경우의 수를 가려주어야 정상이지만, 진료시간에 쫓긴다는 이유로 적당히 넘어가면 중요한 포인트를 높칩니다.


환자나 의료진이나 모두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이 글은 대부분의 환자분들 입장에 서서 더 정확하게 좋은 진료를 받으시기를 바라는 글이니 몇가지 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 가능하면 구체적으로 주저리주저리 그대로 설명하세요.

"소화가 잘 안됩니다." 이 정도 표현이야 그냥 일반적인 문장이니 내가 한번 걸러서 말해도 되겠지 하지 마세요.


"맥주만 마시면 속이 부글거리면서 아랫배가 살살 아프고 대변이 무르게 나와요.",

"새벽 2시만 되면 요기 명치부근이 아린것 같으면서 불편해서 잠을 깰때가 많아요.",

"화장실에만 가면 대변이 가늘고 풀어지게 나오면서 오래앉아있어야 됩니다. 개운하지도 않아요."

환자분이 소화가 안된다고 말씀하실때 결국 제가 밝혀냈던 '흔한 진술'들입니다.



2. 본인 느낌 그대로 최대한 묘사를 하세요.

시인이나 소설가가 아니어도 좋으니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느끼는 그대로를 설명하시면 좋습니다. "허리쪽으로 삐끗해서 아파요." 너무 모호합니다.


"저번 주에 골프 무리한 후에 오른옆구리 딱 요자리가 갑자기 너무 아파요."

<갈비뼈 골절로 밝혀짐>


" 허리오른쪽이 화끈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바늘로 찌르는 것 같기도 해요."

<허리쪽 대상포진으로 밝혀짐>


환자분이 그냥 요통이다, 담결렸다 말씀하실때 결국 제가 밝혀냈던 '역시나 흔한 상황들'입니다.



3. 병명 대신 증상위주로 말씀하세요.

TV나 신문에서 의학지식이 너무 많이 보도되면서 일반인들이 너무도 쉽게 '어설픈 판단'을 합니다. 물론 저를 비롯한 기존 의료계전체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은 것이 근본원인이겠지만, 아무튼 여러분 한분한분이 어설픈 의학정보로 건강을 해치시면 안됩니다.


"허리근육통으로 왔어요. 많이 아프지는 않으니 디스크는 아니에요."

<디스크판정후 수술받으심>


"자궁은 괜찮아요. 자궁이 냉해서 생리통이 있을 뿐이예요."

<자궁근종 발견하여 수술후, 한방으로 수술뒤 조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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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의 S님에게로 돌아갑니다.

"지금까지 가신 병원에서 정확하게 무엇무엇이라고 증상 설명을 하셨나요?"

이 정도로 대놓고 여쭤봐야 겨우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목디스크가 아니라 머리속으로 중풍이 오신것 같은데요, 팔다리 움직이고 멀쩡하시지만 머리쪽 중요한 부분으로 살짝 중풍이 시작된 것 같애요. 그냥 팔이 안좋다고만 하셨으니 목디스크라고 보셨을테지만, 지금 말씀하시는 대로 요기요기부분이 불에 댄것처럼 감각이 이상하다는 말씀을 꼭 하셔야 하구요, 눈도 제가 확인해보니 이러이러한 움직임이 안좋아요.


제가 소견서에 자세히 적어서 드렸으니 입원하라면 다른 말씀말고 곧바로 네 하시고, MRI 찍으라면 최대한 빨리 찍어달라고 하셔요. 돈 든다고 안찍으려고 하지 마시구요."


잊고 지냈던 그분이 다시 오신 것은 그로부터 6개월뒤.

저를 만나고 반신반의하며 대한민국사람 다 아는 큰 병원에 가셨는데, 응급으로 MRI찍고 바로 입원하셨다네요. 그날부터 점점 증상이 심해지기 시작해 3일만에 의식불명에 빠지셨다가 2주만에 중환자실에서 나와 이래저래 치료하고 잘 나아져서 2달만에 퇴원하신 후, 오늘은 중풍후유증 보약에 장염치료를 하려고 오셨답니다.


"어? 말씀들어보니 치질도 있으신 것 같은데요? 일단 대장항문과 가서 검사부터 하셔... "

/"참 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시고, 보약이나 잘 지어주세요!!"


역시 사람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제가 더 정신바짝차리고 진찰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호르몬닥터 권영구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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