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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Dec 11. 2023

@소통잡화점 991 <간단히만 대답해 달라고 부탁할~

@소통잡화점 991

<간단히만 대답해 달라고 부탁할 때>     


1.

“전화로 잠깐만 여쭤보면 되는데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꼭 이런 전화가 걸려 온다. 전화로 본인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그에 대한 나의 솔루션을 기대하는 내용이다. 나에게 진료를 받은 분 또는 약을 쓰신 분이라면 아무 문제없다. 진료내용과 검사기록이 남아있으니, 기간이 너무 오래 경과하지만 않았으면 웬만한 질문은 다 해결해 드릴 수 있다.     


2.

문제는 한 번도 뵙지 못한 분이다. 검색중 나의 블로그 내용을 읽으시고 믿음이 생기셨다며, 궁금한 내용을 전화로 ‘간단히’ 질문하려고 하신다. 진찰하지 않은 분이니 함부로 대답 드리기 어렵다고 하면, 투덜거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 안내는 전화상담이라고 지금 피하시는 건가요? 진찰료 보내면 답해주실래요?” 이런 말씀까지 들어봤다.     


이해는 간다. 전화상담을 하나의 서비스라고 생각한다면, 이미 돈내고 진료 받은 환자에게만 그런 특혜를 베푸는 줄 아실 수도 있다. 핵심은 정보의 양과 질이다. 병원에서 무슨 병이라고 들었고, 본인은 이러이러한 증상이 제일 힘들다는 말씀만으로는 아무 답도 할 수가 없다. 환자분 생각에는 그 정도 정보만 알려주면, 의료인은 덧셈 뺄셈 수준으로 쉽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 보다.     


3.

여러 분야의 논리적 판단이 다 마찬가지지만, 특히 의학분야의 판단은 일대일 연결이 거의 없다. 증상 하나가 원인 하나로 연결되고, 병명 따라 치료법이 딱 정해져 있다면 너무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의료진이 오래 공부할 필요도 없고 실수도 줄일 수 있다.      


“이런 증상도 그렇게 중요한가요? 저는 상관없는 줄 알고 말씀 안 드렸는데요.”

깊이 있는 판단은 빅데이터의 정보수집 능력부터 시작된다. 초심자가 무심코 지나치는 단서 중에 숨은 보석을 찾아내는 역할이 바로 안목 있는 관찰자의 몫이다. 여러 가지 변수를 동시에 테이블위에 올려놓고서, 여러 조건들을 이리저리 꿰어 맞추면서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내려야 한다.     


4. 

“바쁘시니까 간단하게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만이라도 알려주세요.”

이런 전화는 꼭 토요일 퇴근 3분전, 또는 휴가전날 불끄고 마감한 직후에 걸려온다. 정신없고 어수선한 분위기속에 대충 대답하면 반드시 뒷탈이 생긴다. 매순간 마음을 부여잡고 긴장하지 않으면 큰 코 다친다. 상대편이 미주알고주알 정보를 다 말씀해 주시지 않아서 그랬다며 핑계를 대봐도 소용없다.     


배가 아프다며 오신 환자분이 계신다. 체했으니 간단히 침만 맞고 가시겠다는데, 말씀하시는 내용과 몸 상태가 영 맞지 않다. 확실치는 않지만 맹장염일 수도 있겠다. 맹장 이상이라고 항상 오른쪽 아랫배만 아프지는 않다. 시간대에 따라 위치가 계속 바뀐다. 큰 병원 진료를 권했지만 한사코 거부하신다. 이러이러한 증상위주로 살펴 보시다가 여차하면 응급실에 가시라고 신신당부했다. 결국 내 말이 맞았다.     


5.

“지금 엄청 급한데요.”, “간단하게만 좀 알려주세요.”, “한마디로 왜 이런 가요?” 

이런 종류의 질문을 들으면 항상 조심하자. 상대방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조른다고 한들, 섣불리 마음이 흔들리면 안 된다. ‘판단하기에 정보는 부실하지만 저쪽에서 먼저 대충이라도 알려달라고 부탁했어. 잘못 되더라도 내 책임은 없겠지.’ 천만에 말씀이다.      


사람마음은 언제나 간사하게 변한다. 별일 없이 넘어가면 본인 원하는 답을 주어 고맙다고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면 눈빛부터 바뀐다. 판단을 내릴 상황과 조건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상대가 아무리 윽박지르거나 독촉하더라도 멈출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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