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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Dec 20. 2023

@소통잡화점 998 <감나무 아래 찾아가 눕는 성의~

@소통잡화점 998

<감나무 아래 찾아가 눕는 성의라도 보이자>     


1.

“지난 1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을 했어요, 이 리스트를 주욱 보시면...”

아무도 당신에게 놀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제 시간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했으며, 업무 중 탕비실에서 수다떠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들 안다. 그럼 당신이 리더라면 그렇게 성실한 당신에게 어떤 평가를 내리겠는가.     


2.

어느 시트콤에 연봉협상 장면이 나온다. 김사원이 본인 성과에 대한 근거서류를 한아름 들고 온다. “사무실 꽃에 물을 열심히 주고 환기도 잘 시켰어요. 안쓰는 콘센트는 모두 뽑아 전기료를 아꼈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요?” 팀장님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커트하자 돌아서며 중얼거린다. “아, 역시 화장실 청소까지 했어야 하는 건데.”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다른 사람 머릿속은 내 눈에 훤히 보이고, 남들은 내 마음을 못 본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내 앞에서 잔머리 굴리고 변명을 늘어놓으면, 순간적으로 공중부양하여 상대방 머리꼭대기에 올라앉는다. 반면 내가 아쉽거나 내 주장을 어필할 때는, 온갖 건수를 끌어들여 단 1점이라도 더 올리려고 애쓴다.     


3.

답은 아주 간단하다. 내 눈에 누군가 일을 잘한다는 느낌이 들면 나도 그렇게 처신하면 된다. 그 사람만큼 마음을 쓰거나 몸을 움직이지 않고서, 똑같은 대접을 받고 싶어 하니 문제다. 본인 스스로도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니, 자꾸 무리수를 두어가며 억지를 부린다.      


회사 이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증명하라고 하면 얼핏 막연해 보인다. 팀원으로서 시키는 일을 성실하게 다 수행했으면 됐지, 그 이상 무슨 증명을 하라는 말인가. 같은 일을 오랫동안 반복했다고 해서, 익숙해진 댓가로 포상하는 조직은 없다. 능숙해지면서 속도가 빨라져 처리용량이 늘거나, 본인이 알아서 더 스피드를 올리려고 고민한 흔적이 필요하다.      


4.

핵심은 결국 자세와 태도다. 정말 맡은 일을 더 잘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딱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고, 회사는 나 몰라라 내 워라밸만 칼같이 지키고 싶어 하지는 않았는가. 연차에 따라 자연 보상만 기대하고 있다가, 내 뜻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퇴직하고 아무 곳이나 이직하면서 20%쯤 더 불러보자는 심산은 아닌가.     


회사 같은 조직만 냉정하게 군다고 생각하지 말라. 연인끼리 이 정도 신경썼으면 충분해, 가족끼리 이 정도 명절 챙겼으면 할 도리는 다했어... 그런 마음을 먹는 순간 행동 하나하나에 다 티가 난다. 아주 오래된 연인사이 또는 처가 시댁에서 그런 행동이 드러나면 대판 싸움으로 이어지기 딱 알맞다. 속내는 그렇지 않은데 실수라고 주장하지만, 지금까지의 그 수많은 행동들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5.

대학은 탐구능력이 있는 학생을 원한다. 자기 스스로 알아서 성장할 능력이 있으니, 대학에 들어온 이후에도 쑥쑥 자라날 인재로 본다. 그런 학생을 학종으로 뽑는다. 누구는 학종입시 합격을 위해 어떻게 하면 잘 보일까 궁리하며, 무슨 무슨 대회에 참가하고 수상경력만 늘어 놓는다. 다른 누구는 수업시간 배운 내용에 궁금증을 가지고, 호기심에 또 호기심을 이어가며 조사한다. 누가 봐도 끓어오르는 관심은 한눈에 보인다.     


최소 감나무 아래를 찾아가 자리 펴고 입 벌리는 성의라도 보이자. 내 방 침대위에 가만히 누운 채, 어디선가 감나무가 자라기 시작해서 내 입속에 감이 톡 떨어지는 기적을 바란다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정말 잘하고 싶다면 정말 제대로 하고 싶다면, 그 마음속 불씨를 활활 불태우라. 하려고 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눈에 들어오고, 하고 싶지 않으면 백만스물한가지 안 해도 되는 핑계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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