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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Jan 15. 2024

@1011 <겸손도 때와 장소에 맞지 않으면~

@1011

<겸손도 때와 장소에 맞지 않으면, 남에게 상처만 준다>     


1.

“별로 좋은 집 아니야, 겨우 6억인데 뭘.”

김대리 내 집 마련했다고 집들이 갔다가 다들 상처만 받았다. 그만한 여력이 없어서 집 못 사는 사람이 태반인데, 별로 좋은 집도 아니라니. 그런 집도 없는 나는 어쩌란 말인가.     


2.

겸손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무조건 낮추기만 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본인의 능력, 재력, 외모에 대해 너무 뽐내도 별로이지만, 지나치게 숙여도 역효과가 난다. 본의 아니게 같은 항목의 남의 처지에 대한 평가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이대리 박대리의 경제력을 직접 평가한 적은 없다. 다만 6억이라는 금액이 별것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다들 자신을 향하는 소리로 들으니 문제다. 분위기는 싸늘해지는데 말한 사람은 이유조차 모른다.      


3.

“어휴, 우리애 공부 별로 못해. 이번에 B대학 겨우 들어갔어.”

마찬가지 상황이다. 상대방 아이는 C대학에도 붙을까 말까 마음 졸이고 있는 중이다. B대학은 언감생심 감히 원서도 못 내볼 수준인데, 공부 못하는 아이가 가는 학교라고 하다니.      


그 사람에게 우리 아이 입시 결과는 절대 말 못 한다. 게다가 그 사람과 원수가 될 확률이 높다. 나의 귀에는 ‘우리 아이보다 공부 못하는 그 집 아이는,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비난처럼 들린다. 상대방은 아이 자랑질 대신 겸허하게 말하려다가, 남의 가슴에 상처만 안겨 주었다.     


4.

좋은 방법이 있다. 무미건조하게 팩트만 말하는 방식이다. 누군가 어느 대학 갔느냐고 물으면, 무슨 대학 무슨 과에 갔다고 툭툭 말하면 된다. 남 눈에 그 대학이 좋아 보일지 별로일지 상관할 필요 없다. 그저 상대가 궁금해하는 우리 집 아이 입시 결과에 대한 팩트만 ‘뉴스속보’로 전하자.     


그 사실관계 앞뒤로 길게 사족을 붙인다는 말은, 부모가 본인 체면과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 눈에 불만족스러우면 공부 못한다, 안 좋은 학교다 미리 단서를 많이 붙인다. 상대가 깎아내릴 말을 미리 내뱉으며 차단하는 효과를 노린다.     


5.

만일 상대와의 관계가 신경 쓰이고 구태여 이런 이야기 주고받기 싫으면, 그냥 대답을 회피해도 된다. 이 집 시세야 검색해 보면 뻔히 나올 텐데, 꼭 내 입으로 말할 필요도 없다. 말해주어도 그다지 좋은 반응이 안나온다. 6개월 전에 비해 얼마가 떨어졌다느니, 앞으로 더 떨어질지도 모른다느니, 걱정처럼 보이는 빈정거림만 늘어놓는다.     


“그동안 모은 돈에다 대출까지 합쳐서 큰 맘먹고 집 샀어. 이제 열심히 갚아나가야지 뭐.”

“나름 열심히 공부해서 본인이 원하는 학교 학과에 잘 붙었어. 대견하지 뭐야.”

호사가들의 논평을 우아하게 피하면서, 얼마든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남 앞에 있어 보일 필요도 없고, 구태여 없어 보일 필요도 없다. 나는 나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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