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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Feb 01. 2024

@1024 <인사 한 번 잘하고 멋지게 대접 받은~

@1024

<인사 한 번 잘하고 멋지게 대접 받은 이야기>     


1.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 “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초면에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려고 진료전 아이스 브레이킹을 시도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딱 한 글자다. 이후 여러 가지 대화를 시도하며 진찰을 하지만 대부분 처음의 그 썰렁한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2.

어느새 환자를 진료한지 27년째다. 그동안 얼굴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눈 환자가 25만 명이 넘는다. 중복된 환자들을 뺀다 해도 꽤 많은 숫자다. 남녀노소 각계각층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사람과 진지한 대화를 나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자연스럽게 사람들 소통 방식에 대한 나름의 판단기준이 생겼다.    

 

여러 가지 관점이 있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처음 인사말 오가는 그 짧은 순간이 핵심이다. 가히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라고 부를만하다. 인사 한번 나누고 나면 이번 소통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대략 견적이 나온다. 물론 나는 프로이므로 매번 상대에 알맞게 새로운 전략을 짜서 대처한다.     


3.

“인사를 그렇게 대충 하는 걸 보니 그리 예의 바른 사람은 아닌 듯하구먼.”

어르신들은 인사에 특히 민감하다. 인사말 한 번에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을 정도다. ‘인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난리인지... 다들 꼰대 같아.’ 그렇게 깎아내릴 문제만은 아니다.      


누군가를 오늘 처음 만나면 상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니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MBTI 물어보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이때 멋진 인사로 좋은 인상을 주면 엄청난 가산점이 붙는다. 졸지에 인격 수준까지 하이레벨로 평가받는다.      


4.

대학 때 무의촌 의료봉사를 자주 다녔다. 몇몇 친구들과 선발대로 먼저 내려가 진료 장소와 숙소, 식당 등을 섭외하는 임무를 맡은 적이 있다. 우리를 섭외한 이장님부터 만났다. “저... 정말 죄송한데요, 저희 마을 촌장님이 좀 깐깐한 분이세요. 미리 말씀드려봤는데 아무래도 장소 섭외가 어렵겠어요.”     


일단 촌장님 댁이 어딘지 묻고 같이 가보자고 말씀드렸다. “직접 가셔도 별 소용이 없을 텐데요…” 이장님이 난처해하시는 찰나 저 멀리 촌장님이 걸어오고 계셨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의료봉사 의논 드리러 서울에서 내려온 권영구라고 합니다.” 다짜고짜 길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마을회관 무상임대, 노인정 숙소 제공, 부녀회 총동원하여 삼시세끼 풀코스 조달, 마지막 날에는 막걸리 파티까지 해주셨다.     


5.

인사와 아부는 전혀 다르다. 인사는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상대에 대한 존중을 표시하는 절차다. 인사 잘하면 면접에서도 플러스알파가 있다고 다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인사하는 사람 보기가 힘들다. 상대방에 대한 진실한 마음이 없는데 허리 굽히는 각도와 인사멘트 달달 외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 가지 작은 팁을 말하자면 인사할 때 동작과 말은 따로 하면 좋다. 보통 고개와 몸을 숙이면서 인사하는 사람이 많은데 상대에게 인사말은 하나도 안 들린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이 회사 무슨 업무에 지원한 아무개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고개 들고 멘트를 또박또박 말한 뒤 그다음에 몸을 숙이면 된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사람이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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