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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Feb 07. 2024

@1028 <영어이름을 꼭 만들어야 할까>

@1028

<영어이름을 꼭 만들어야 할까>     


1.

“왜 다들 영어 이름을 새로 만들죠? 한국에 와서 정말 놀랐던 경험이에요.”

미국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동네 영어학원만 가도 영어 이름을 새로 지으라는 세상이 되었다. 교환학생 한번 갔다 오거나 외국에 살다 온 사람은 어김없이 영어 이름이 하나 더 있다. 영어로 만드는 새로운 이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     


2.

회사에서도 수직적인 문화를 타파하고자 이름만 부르는 문화가 시작되었다. 성까지 부르면 애매하니 이름을 떼어내서 불러보았다. 너무 짧고 민망하다. 호칭도 없이 나이도 많고 고위직인 분의 이름을 부르려니 입이 차마 안 떨어진다.      


영어 이름으로 바꿔봤다. ‘제임스’ 오, 괜찮다. 상대 본명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직책도 없으니 딱 알맞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처음 접하는 새로운 단어이니 기존 호칭 문화와 전혀 부딪치지 않는다. 일반 직장의 영어 이름 문화는 이렇게 이렇게 흘러왔다.      


3.

“외국인들은 한글 발음을 절대 못해요.” 일본 사람들만 해도 자음 모음체계가 많이 달라서 한글이름을 말하면 영 어설프게 들린다. 배용준은 평생 ‘용사마’ 대신 ‘욘사마’로 불린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한 글자씩 떨어지는 한글이름 발음이 너무도 어렵다.     


심지어 발음이 비슷한 다른 영어 단어가 연상되면 놀리기도 한다. 가뜩이나 외국에 처음 나가서 인종차별에 잔뜩 긴장해 있던 차에 이름까지 놀림거리가 되면 더 화가 난다. 아무 고민 없이 그들 눈높이에 맞는 흔한 이름으로 바꿔 버린다.     


4.

“지금까지 Kim으로 불렀는데 네 이름이 아니라 성이었어? 정말 미안해.”

영국인들 중 가끔 이런 사과를 할 때가 있다. 영국에서는 예전에 귀족이 하인을 부를 때 “어이, 김씨” 하는 분위기로 성만 불렀다고 한다. 우리가 성을 이름처럼 불러달라고 먼저 말한다면, “마님, 그냥 김씨, 김가 라고 불러 주십쇼.”하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유독 아시아인, 특히 한국과 대만 사람들이 영어식 이름에 집착한다고 한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오스트리아 출신에 독일 성씨를 따르고 있다. 토종 미국인들도 그런 이름을 보면 ‘알파벳을 흔들어 섞은 뒤 마음대로 뽑아 배열한 듯한 이름’이라고 말할 만큼 발음하기 어려워한다. 그래도 다 배우고 연습해서 본래 이름대로 부른다.     


5.

오해는 없어야겠다. 한국 살면서도 내 이름 마음에 안 들면 합법적으로 개명하는 세상이다. 미국 이름을 새로 짓고 말고는 전적으로 본인 판단이다. 옳고 그름 따위는 없으며 오로지 자기 자신의 선택일 뿐이다. 다만 남 눈치 보느라 미리 숙이고 들어가려는 결정이라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인들조차 이름이 너무 길고 어려우면 나름의 규칙으로 줄이기도 한다. 처음 만날 때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꼭 물어보는 이유다. 어차피 이름은 부르는 사람과 불리는 사람 사이의 사적인 약속이다. 그래도 외국 땅에서 한국 이름을 내걸고 꿋꿋이 사는 모습을 보면 감동스럽다. 자랑스러운 그 이름은 바로 ‘쓰온 흐엉 민’. 이제 런던에서 ‘son’이라고 쓰면 아들이라는 단어인지 손흥민의 손인지 대등하게 경쟁할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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