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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Feb 23. 2024

@1040 <중재자가 필요할 때와 중재하면 안될 때>

@1040

<중재자가 필요할 때와 중재하면 안될 때>     


1.

“그럼 각자 이렇게 노력해 보시고 4주 뒤에 다시 뵙겠습니다.”

중재 과정 없는 이혼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쪽이 대놓고 잘못을 저질러도 이혼소송 전에 조정을 거쳐야 하고, 조정 없이 소송을 제기해도 가정법원이 조정에 회부할 때가 많다. 바로 파국으로 치닫기보다 차악의 합의라도 권해보는 과정이다.     


2. 

서로 의견차가 생기면 싸움이 시작된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했으니 무조건 끼어들어 말려야 할까. 아니면 아이들은 다 싸우면서 큰다는 말을 떠올리며 밀고 당기는 과정을 거쳐 스스로 타협점을 찾을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할까.     


중재자는 어디까지나 제3자다. 다툼의 당사자인 A나 B와는 전혀 다른 입장이다. 중재를 빌미로 섣불리 끼어도 안되고, 중재를 포기한 채 손놓고 내버려 두기만 해도 곤란하다. 적절한 선을 지키며 상황판단을 정확히 해야 한다. 중재자가 현명해야 문제가 부드럽게 해결된다.     


3. 

중재가 필요 없는 경우부터 살펴보자. 첫 번째, 당사자들에게 문제해결능력이 있는 경우다. 양쪽이 적절한 인격과 판단력을 가졌다면 분쟁의 과정을 거치더라도 결국 성숙하게 합의에 이른다. 두 번째, 일회성이고 작은 범위의 분쟁인 경우다. 휴가를 제주도로 갈지 부산으로 갈지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면 구태여 중재하겠다고 나서지 않아도 된다.     


세 번째, 당사자 사이에 대화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경우다. 티격태격하든 고성이 오가든 양쪽 사이에 대화 루트가 계속 뚫려 있다면 어떻게든 스스로 솔루션을 찾고 있다는 증거다. 이때 둘 사이에 어설프게 끼어들면 엉뚱한 싸움으로 번질 위험도 있다.      


4.

반면 중재가 꼭 필요할 때도 있다. 첫 번째, 갈등이 너무 빨리 악화되거나 위험한 경우다. 요 며칠 윗집 엄마의 고함소리와 아이 울음소리가 심상치 않다. 아이 안전을 위해 경찰을 불러야 하나 고민 중이다. 두 번째, 당사자간 신뢰가 없는 경우다. 말문을 닫고 실력행사를 시작할 때가 많다. 소통이 안되고 있으니 저절로 개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세 번째, 의견 충돌에 여러 가지 복잡한 이해관계가 뒤섞여 있는 경우다. 각자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고 선뜻 어느 한 쪽을 빌런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중재자가 타협안을 들고나와 중간지대에서 주고받고 합의를 권해야 겨우 마무리될 때가 많다. 타협이 안되면 국가간 전쟁이 일어나고 정치싸움이 벌어지며 이익집단끼리 공방전이 펼쳐진다.     


5. 

어설프게 중재에 나서면 오지라퍼 소리만 듣고, 끝끝내 지켜보기만 하면 방관자 소리를 듣는다. 분쟁이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면 중재자가 일단 양쪽을 진정시켜야 한다. 뜨거운 프라이팬에 찬물이 직접 쏟아지면 뜨거운 물이 튀어 화상만 입는다. 미지근한 중재자가 사이에 끼어야 양쪽 모두 보호할 수 있다.      


중재자는 중간에서 상황에 맞게 양쪽을 재단하는 사람이다. 마치 자신이 정의의 사도가 된 것처럼 공정한 판결을 내리겠다고 덤비면 안 된다. 결국 양쪽 당사자가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합의를 해야 분쟁이 끝난다. “남편은 이런 부분 개선할 의지가 있으신가요? 부인은 이런 내용 받아들이고 용서할 마음이 있으신가요?” 다툼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고 또 다른 이름은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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