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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Apr 08. 2024

@1071 <이 내용 알아요? 몰라요? 가르치면서~

@1071

<이 내용 알아요? 몰라요? 가르치면서 모욕은 하지 말자>     


1.

A “지금은 이렇게 해야 될까요, 저렇게 해야 될까요?”

B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A “어허, 그게 아니죠. 전에 말한 내용인데 다시 가르쳐 줘야겠군요.”

팀장님이 업무를 가르쳐 주실 때마다 괜히 기분이 나쁘다. 그 특유의 말투로 사람 마음을 상하게 하는 비상한 재주가 있으시다.     


2.

“그럼 저보고 어떡하라구요.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신경도 안쓰고 계속 설명만 하라구요?”

분명 팀장님은 김대리를 위하는 마음에서 한 행동이었다. 일사천리로 말을 빨리하면서 대충 지나가는 김부장님 보다야 백번 낫다.      


다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누가 봐도 팀장님의 지식수준은 김대리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아직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해서 대리인데 이미 팀장급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지금 팀장님이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따로 불렀을 리가 없다.     


3. 

지금 팀장님은 교육을 빙자해 모욕을 하고 있지만 본인만 모르고 있다. ‘너는 모르지? 나는 안다.’ 설명을 듣는 김대리는 그저 팀장이 자신의 지적 우위를 강조하기 위해 계속 질문을 던지며 우롱한다고 느낀다. 아는지 모르는지 체크하려고 물었다지만 사실상 일 처리 내용만 봐도 어디를 잘 모르고 있는지 훤히 꿰뚫고 있지 않은가.     


“잘 모르겠습니다.”

구태여 본인 입으로 모른다는 말을 하게 만들면 갑자기 눈이 초롱초롱 빛나며 정답이 궁금해질까. 모르는 줄 뻔히 알면서 계속 질문을 이어나가니 짜증만 난다. 그냥 주욱 설명을 마치고 나중에 질문을 받으면 좋을 텐데 연거푸 모른다는 대답을 반복하게 만드니 자세한 설명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4.

김대리 이해를 돕기 위한 주의 환기용 행동이라면 이런 식의 질문은 부적절하다. 차라리 일정 부분 끊어서 설명한 뒤 잘 알아들었는지 질문할 꺼리는 없는지 중간점검하는 정도가 알맞다. 상대가 입다물고 가만있으면 말하는 입장에서 답답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퀴즈를 내며 채점하려고 들면 역효과만 난다.     


가끔은 살짝 악의적인 의도가 숨어있을 때도 있다. 김대리의 성장을 위하는 마음이 아니라, 팀장 본인이 우월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경우다. 모른다는 대답을 끌어 내어 상대를 1층 내려가게 만들고 그 내용을 설명하며 본인은 1층 위로 올라간다. 순식간에 너와 나의 어마어마한 격차를 실감하게 만들고 싶은 인정욕구다.     


5.

“잘 모르시는 말씀, 이 방식이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이에요.”

전혀 다르다. 소크라테스는 끊임없이 질문을 퍼붓지만 상대를 짜증 나게 하지 않는다. 상대방 스스로 자신의 빈틈을 깨닫게 하려고 빈틈만 톡톡 건드린다. 오만에 빠져 있던 사람이 알고 있던 지식의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 그 부분을 설명하며 한순간에 지적 쾌감을 선사한다.     


A “전화번호 입력을 번번이 빠뜨리네요, 이유가 있을까요?”

B “물건 구입해서 가져가셨으니 다 끝난 일 아닌가요. 왜 엑셀에 전화번호를 또 입력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A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만약 포장이 잘못되어 다른 색상을 가져가셨으면 어떡하죠?”

B “아, 그럼 연락을 해야 할 수도 있겠군요. 앞으로는 열심히 입력할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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