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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Apr 09. 2024

@1072 <적의 적은 정말 내 편일까>

@1072

<적의 적은 정말 내 편일까>     


1.

“저는 A전무 기획안을 지지하겠습니다.”

의외다. 부사장은 A전무와 그리 친분도 없는데 갑자기 힘을 실어주겠다며 나선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라 A전무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다. 비밀이 숨어있었다. A전무와 경쟁 PT에 나선 B전무가 부사장의 철천지원수였다.     


2.

한마디로 부사장은 평소 얄밉게 생각하던 B전무의 앞길을 막기 위해 별 이해관계도 없는 A전무 편을 들었다. B전무는 수익률이 워낙 압도적인 대단한 사업을 준비했으므로 본인이 탈락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본인이 부사장과 껄끄러운 관계였지만 A전무가 부사장 라인이 아니고 해서 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제 사업이 월등히 좋다는 사실은 뻔히 아실 텐데요, 부사장님은 왜 A전무 손을 들어주셨나요?”

부사장이 대놓고 ‘당신이 얄미워서’라고 말할 리는 없다. 오만가지 구차한 이유를 들어가며 B전무 기획안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당연히 말의 앞뒤가 맞지 않고 평소 부사장답지 않은 모습이다.     


3.

사람의 악감정은 이렇게나 무섭다. 지금으로부터 어언 10년 전 부사장의 모친상이 있었던 그날이 시작이었다. B전무는 거액의 계약건을 이유로 장례식장에 불참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접대골프 약속이었다는 사실에 부사장은 크게 분노했다. 언젠가 제대로 되갚아 주리라 마음에 새겨두었는데 그날이 오늘이었다.     


그렇게도 복수를 하고 싶었으면 일대일로 만나 면전에 대고 풀었어야 한다. 직접 말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쿨하게 잊어버릴 자신도 없으니 이런 식으로 돌려까기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감정의 불꽃에 휩쓸리면 합리적인 이성이 마비되고 만다. 회사에 손해가 될 줄 뻔히 알면서도 A전무 쪽 기획안을 선택했다.     


4.

감정적인 대처는 언제나 후폭풍을 남긴다. 예상대로 A전무의 무리한 기획은 문제가 되었고, 같은 배를 탔던 부사장의 입지도 큰 타격을 입었다. 복수하겠다는 마음에 눈이 멀어 무모한 선택을 한 결과다. 적의 적은 막연히 내 편인 줄로만 알았는데, 분노의 감정에 눈이 멀어 내게 피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놓쳤다.     


부사장이 A전무에게 가진 원한은 두 사람 사이의 문제다. 적의 적을 이용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문제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아무 관계없는 제3자인 B전무까지 끼어들게 되고 회사 실적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사로운 감정의 불꽃으로 시작된 일이 결국 자기 자신마저 태우고야 말았다.     


5. 

인간인 이상 감정을 완벽하게 통제하기는 어렵다. 때로 화가 나면 뚜껑이 열리고야 만다. 용서와 이해, 소통과 타협으로 아름답게 해결하면 가장 좋다. 그런 방식으로 감정을 해소하기 어려우면 차선책을 써야 한다. 당사자를 만나 직접 할 말을 하고 화끈하게 해결하자. 격투기를 제안해도 좋겠다.     


면전에서 말할 자신이 없을 수도 있다. 그만한 용기가 없다면 강제로 용서하라. 누군가를 끌어들이고 교묘하게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면 어느새 막장드라마가 시작된다. 이런 무모한 행동을 정치공학이라는 말로 포장하면 안 된다. 일대일로 만나 호통을 쳤다면 사연을 알고 다들 내 편을 들었겠지만, 이런 지경에 이르면 이제 나를 보는 시선마저 곱지 않게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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