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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Apr 10. 2024

@1073 <사람사이 정치를 잘해야 평화가 찾아온다>

@1073

<사람사이 정치를 잘해야 평화가 찾아온다>     


1.

“어머님하고 식사 모임 날짜 정하기로 했다며? 나는 14일이 제일 좋아. 13일은 안되고 12일은 시간이 좀 빠듯해. 11일은 일이 많아서 피곤하지만 정 그날 밖에 안된다면 할 수 없고.”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진다. 와이프가 본인 일정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약속을 잘 잡도록 도와주었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막막하다.     


2.

“어머니, 모임날짜 언제로 할까요? 와이프 의견은 이러이러 하다는 데요?” 

어머니는 기분이 팍 상한다. 아랫사람인 며느리가 감히 본인 일정 주욱 통보하고 그대로 따르라는 말인가 싶어 황당하다. 이런 미묘한 소통문제가 생기면 나중에 기어이 사고가 터진다. “얘야, 회사는 안 다니지만 나도 마냥 노는 사람은 아니란다.”     


와이프는 시어머니가 어느 포인트에서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본인은 최대한 상세하게 자신의 상황을 남편에게 미리 전하고 모임 기획에 적극 참여했다고 생각하는데 결과는 예상과 너무도 다르다. 나중에야 남편이 자신의 말을 액면 그대로 옮겼다는 사실을 알고 우다다 한판 퍼붓지만 남편은 적반하장. “아, 몰라 몰라. 앞으로는 당신이 어머니하고 직접 통화해.”     


3.

이간질이라는 말이 있다. 거짓말과는 성격이 다르다.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사실을 왜곡시키면 나중에 진실이 밝혀진 뒤 낭패를 겪지만 이간질은 그런 위험이 없다. 사실 그대로의 정보를 잘 활용하기만 해도 얼마든지 두 사람 사이를 벌려놓을 수 있다.      


이간질을 하려는 악의적인 태도가 아니었다 해도 사이에서 입을 잘못 놀리면 아무 문제 없는 일상까지 순식간에 전시상황으로 둔갑한다. 악의적인 이간질이든 어리버리한 말실수이든 사람사이 메신져 역할을 맡은 사람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그 순간 팀웍은 산산조각 난다.      


4.

와이프 상황을 전해 듣고 자신의 일정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옵션은 한두 가지로 좁혀진다. 하지만 상대는 손윗사람인 어머니다. 바쁜 사람들끼리 미리 의논하여 일정을 이렇게 결정했다고 알리면 아무리 마음씨 좋은 어른이라도 기분 좋으실 리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머니는 언제로 정하면 제일 편하시겠어요?” 중재자가 연장자 또는 상급자의 의향을 정중하게 묻는 형식을 취하면 좋다. 그렇다고 아무 사전 작업 없이 대뜸 물으면 곤란하다. “다들 말씀하신 그 날짜는 힘들다는데요?” 나중에 그 날짜가 부적절하게 판명될 경우 어른 입장을 다시 뒤바꾸기는 어렵다. 묻고 답하는 그 순간 끝을 봐야 한다.     


5.

생각이 다른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려면 중재자의 물밑 작업이 중요하다. 미리 양측 의사를 잘 파악한 뒤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 만일 어느 한쪽 지위나 권력이 높다면 그 나머지 사람들의 상황부터 더 치밀하게 사전조사해 두어야 결론내리기가 수월하다.      


“12일로 하자꾸나”

“(그 날은 와이프가 시간 빠듯한 날) 아, 좋아요. 그런데 그날은 제가 병원 약속이 있어서 좀 늦어질 수도 있는데 괜찮으세요?”

“어이쿠, 그러면 안 되지. 그럼 언제가 편하니?”

와이프 멘트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대신 본인 사정으로 슬쩍 말을 바꾸기만 해도 훨씬 부드럽게 넘어간다. 사람사이 정치를 잘해야 평화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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