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고객님. 담당부서로 연결해 드릴게요...

소통법칙022

by 호르몬닥터 권영구

"선생님, 저희 아이 좀 봐주세요, 해열제를 먹였는데도 열이 안내려가요!!"

39도 열이 펄펄끓는 아이를 안고 뛰어드는 엄마가 있습니다. 저희 한의원으로 말이죠. 간간이 진료받으러 온 적이 있는 7살 민정이의 엄마가 많이 놀라서 달려오셨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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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여기는 한의원인데 고열이라고 오시면 어떡해요? 소아과로 가시거나 응급실로 가셔야죠."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다음 장면이지만, 제 3자가 들어도 고구마 100개입니다. 한의사가 할 수 없는 부분이라서 모른다고 했을 뿐인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이엄마도 바보가 아닙니다. 소아과보다 저희 한의원을 먼저 찾은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고열이 날 때 응급실이나 소아과가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누구나 합니다. 하지만 평소 우리 아이를 간간이 진료한 한의사선생님이 친절하며 믿을만하였고, 그간 데이터로 우리 아이에 대해 다른 의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기에 이쪽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렇게 대답한다면 전문적 판단력은 100점일지 몰라도, 눈앞에 닥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0점입니다. 아이엄마는 소아과를 못믿어서 한의원의 침한번, 약한봉으로 마법같은 치료를 기대한 것이 아닙니다. 의료인의 한사람으로서 최선의 공감을 보이며, 패닉에 빠진 엄마대신 합리적인 교통정리만 잘해드리면 대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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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를 아이템으로 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가 "네~ 네 고객님. 담당부서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멘트입니다. 마음은 급한데 속이 뒤집어집니다. 희한한 음악소리 47초 들으며 꾸욱 견디면 '담당부서(라고 주장하지만 또다시 담당부서로 넘길 확률이 높은)' 사람이 전화를 받지만 처음부터 상황설명을 다시 해야 합니다.


"아니, 그럼 제가 담당자도 아니고, 잘 알지도 못하는데 적당히 대충 대답하라는 말이세욧!!"

물론 그 심정도 이해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당신에게 무작정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내라는 상대방이 원망스러우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입장바꿔 생각하면 답은 간단히 나옵니다. 상대는 당신이 최고전문가라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 분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이라도 알려줄 사람이라고 믿었기에 당신을 찾은 것입니다. 당신이 아는 범위에서 너무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고 해서 당신의 실적이나 수입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고맙게 느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핵심은 우리가 근무하는 자리에 대한 고도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위치가 아무리 세분화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작게는 담당부서에 속해 있고, 더 넓게는 회사안에 존재하며, 결국은 사회전체 촘촘한 그물망속에 들어있으니까요. 우리 모두는 모던타임즈 영화에 나오듯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의 대체가능한 부품하나가 아닙니다. 책임감을 가진 주체적인 인간이 될지, 생각없는 부품으로 전락할 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어이쿠, 열이 너무 올라서 걱정하셨겠네요,

해열제는 어떤 약을 언제 먹이셨어요? 열은 언제 언제 재셨구요? 아이 상태는 어땠나요?...


하루동안의 말씀을 주욱 들으니 해열제로 열이 오르내리긴 했지만 조금씩 더 오르고 있는 것 같고 탈수증상까지 보이는것 같애요. 제가 지금 하신 말씀 정리해서 소견서로 써드릴테니, 근처소아과 말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빨리 가시는 편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권영구원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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