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이의 마음은 동정일까, 측은지심일까?

소통법칙021

[동백꽃필 무렵]에서 까불이가 동백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유는, 동백이가 그를 동정하여 '서비스'로 땅콩과 계란찜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동네사람 모두 불쌍하게 생각하는 미혼모 동백이에게 동정을 받으면, 그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된다는 까불이 마음속의 열등감이 발동했습니다.


그동안 까불이가 해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불쌍히 여기거나 무시한 사람들이었는데, 열등감이 극에 달하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동정 절대금지'를 주장한 철학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철학자 니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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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동정>을 극단적으로 거부합니다. 그의 대표작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죽었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신이 죽은 이유는 인간을 동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동정심 깊은 자들의 행동보다 더 어리석은 것이 세상에 또 있겠는가?,
동정심 깊은 자들의 어리석은 행동보다 더 큰 괴로움을 안겨주는 것이,
세상에 또 있겠는가'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중에서 -


동정받는 사람은 스스로 이겨내기보다 점점 더 동정만 바라게 되므로, 비열해지면서 끝내 나약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고 니체는 말합니다. 같은 맥락으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행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게다가 동정을 베풀어 준 상대방에 대한 심리변화도 중요하게 다루는데, 처음에는 동정에 감사할지 모르나 어느 순간 동정이 사라지면, 당연한 권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며 분노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같은 맥락으로 심리적인 불행에 처한 사람들도 남들이 자신을 한없이 이해해주는 동정만을 바라고,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은 증오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불행을 권력으로 생각하며 동정을 당당히 요구하게 되고, 그 동정이 충분하지 않으면 상대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니 결과적으로 괴로움은 더 심해질 뿐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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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을 베푸는 입장에 대해서도 니체는 문제가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동정을 베푸는 사람은 상대의 불행에서 한발 떨어져 남일 보듯 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는데, 같이 물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강가로 안전하게 피신한 뒤 물속의 사람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동정은 자신이 더 우월한 입장에 있다는 표현이 됩니다.


게다가 동정을 하면 자신은 선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으며, 마음의 불편함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효과까지 있습니다. 즉, 동정을 베푸는 사람은 점점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사람이 되어 간다는 뜻입니다. 일본의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착한 사람만큼 나쁜 사람은 없다."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맹자는 성선설에서 '측은지심'을 이야기합니다.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구하는 것은 그 부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아이의 비명소리를 들으면 괴로울테니 내 마음 편하려고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저절로' 그런 마음이 생겨서 구하는 것으로, 사람의 기본 마음인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말합니다.


측은지심과 동정을 구별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제3자는 그 미묘한 심리와 생각을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 행동을 하는 당사자도 자신이 정말 어떤 마음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측은지심으로 좋게 받아들일지, 동정으로 나쁘게 받아들일지도 예측하기 힘듭니다.


결국 아름다운 결말을 보고 싶다면 베푸는 사람도 순수하게 측은지심을 발동해야 하고, 받는 사람도 순수하게 인간적인 도움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조건이 모두 맞아야 하니 결코 쉽지않은 일이고 어떻게든 오해가 생기며 '까불이'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하지만 혼탁한 세상탓만 하며 '다 부질없어' 삭막하게 살기보다는, 우리 모두 한 줌씩만 선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세상이 조금씩 조금씩 따뜻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감사합니다.

권영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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