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잡화점 663
1.
"소화가 안되고 배가 아파서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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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빨간약 드시고, 내일부터는 파란약 같이 드세요. 3일뒤에 XX검사하러 나오시고, 7일뒤 다음 예약일 맞춰 나오시면 됩니다."
"그래서 결국 내 배는 어떻다는 말이지?"
2.
크게보면 동문서답이다. 분명 어떤 불편이나 궁금증을 느껴 전문가를 찾아갔는데, 결국 돌아온 대답은 엉뚱한 내용들 뿐이다. 이런 상태로 만일 검사결과 괜찮다고 나오기라도 하면 쌓였던 불만이 폭발한다. 돈만 실컷쓰고 치료는 하나도 못 받았다며 씩씩 거리게 된다. 누구 잘못인가.
3.
전문가는 할 말이 많다. "일반인은 전문가가 아니니까 자잘한 증상 하나하나에 집착하시겠죠. 제가 이치에 맞게 주욱 살펴보고 합리적으로 진찰했으니, 제 말을 따르기만 하시면 됩니다."
4.
보통 지식이나 정보가 비대칭적일때 이런 동문서답 상황이 많이 벌어진다. A가 B보다 훨씬 많은 내용을 알고 있다. B의 말 중에 쓸만한 내용만 재빨리 건진 뒤 A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주면 된다는 해결사 마인드다. 말자체는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다만 매번 B입장이 되는 수많은 보통사람들은 늘 기분이 안좋아서 문제다. 전문가 본인도 다른 공간에 가면 금새 B입장이 되면서 말이다.
5.
대화의 기본원칙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소통하는 과정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 원칙은 똑같이 적용된다. 한쪽이 98% 말하고 다른 쪽은 입 다문채 조용히 듣기만 해야 한다면, 대화가 아니라 지루한 수학 수업시간이다. 실제로 전문가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 수업내용 빨리 받아쓰지 않고, 왜 엉뚱한 질문만 해대는지 모르겠다며 말이다.
6.
이 동문서답은 일상생활에서도 똑같이 재현된다.
"엄마, 내일 소풍갈때 이 흰바지 입을래."
/"일기예보에 내일 비온다더라. 이 청치마 입고 장화 신고가 ."
아이가 갑자기 왜 흰바지 이야기를 꺼냈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비오는 날씨에 알맞는 나만의 솔루션을 전달했으면 끝이다. 실은 같은 반 친구들끼리 흰바지 맞춰입고 단체사진 찍기로 약속했는데, 아무소리 못하고 울면서 학교간다.
7.
"그럼, 어쩌라는 거죠? 짧은시간동안 진찰하고 처방까지 내려야 하는데, 환자분 하소연 들으며 시간 다 보낼 수는 없쟎아요?"
아니다, 이야기 순서만 바꾸면 충분하다.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원인부터 떠올린 뒤 증상을 거쳐 치료법까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려고 들지만 않으면 된다. 상대방의 말에서 시작하고, 수많은 설명을 거친 뒤 처음의 말로 다시 돌아가 마무리 지으면 된다.
8.
"소화가 안되고 배가 아파서 불편하셨겠네요. 일단 오늘내일은 이 약들 드시면 급한 증상은 조금 덜하실 거예요. 그런데 말씀을 들어보니 A병, B병 가능성이 있어요. 이 병들은 내버려두면 점점 심해지니까 확인해보면 좋겠네요. C검사 D검사를 하면 정체를 거의 알 수 있으니까, 검사받으시고 7일뒤에 다시 뵙겠습니다. 그러면 소화안되고 배아픈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