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양말한짝이 이혼사유였을까

@소통잡화점 665


1.


"아니, 양말벗어서 세탁기에 안넣었다고 이혼하겠다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이혼사유를 들어보면 보통 어이없다. 양말한짝 또는 비올때 우산 안씌워주고 혼자쓰기 같은 종류다. 제 3자가 들으면 저런 하챦은 일을 못참아서 그렇게 욱하면 어떡하나 하고 쯧쯧쯧 하겠지만 속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양말한짝은 마지막 75,689번째 사건이었을 뿐이다.


2.


신혼초부터 온갖 억울한 일이 많았다. 시어머니 싱크대 째려보시며 칠칠치 못하다고 하셔도 아무 말없이 견뎠고, 명절에 시누이들 손하나 까딱 안해도 전부 참았다. 나혼자 입다물고 인내하면 우리집 평화가 찾아올 줄 알고 지난 30년 속을 태우며 살았다. 어느새 갱년기까지 겹쳐 몸도 안좋은데 남편은 내 건강상태는 관심도 없고, 다음주 제사준비 차질없는지만 체크하고 앉았다. 머리끝까지 열받아 있는데, 오늘 따라 이 인간이 양말을 벗어 소파 틈새에 구겨넣고 있다. 이제 더는 못참는다. "우리 이혼합시다."


3.


묵묵히 침묵하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버럭하면 주위사람들은 다 놀란다. 남들이 뭐라해도 시시비비 가리지 않고 가만히 받아주고 있으니 정말 가마니 취급을 한다. 내 입으로 말을 하지 않으니, 정말 짜장면이 싫다고 하는 줄 안다.


4.


까스불위에 냄비가 차근차근 데워지며 99도에 이르렀다. 손가락을 넣으면 '앗, 뜨거워'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얼마나 뜨거운지 잘 모른다. 마지막 1도가 올라가는 순간 드디어 표면에 방울방울이 용솟음치며 팔팔 끓어오른다.


5.


오스트리아 국왕도 아니고 황태자가 암살되었다고, 그 엄청난 전쟁이 터졌겠는가. 암살은 그 이전에 여러가지 사건사고가 엄청 쌓인 상황에서, 마지막 성냥불 하나였을 뿐이다. 강대국들이 눈독들이던 발칸반도에서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물러나자, 오스트리아가 그 빈자리를 파고들어 보스니아를 차지한다. 오스트리아 황태자는 보스니아에 유화정책을 편다. 세르비아는 같은 슬라브족인 보스니아가 오스트리아에서 독립해 한나라가 되길 바랬는데, 황태자가 걸림돌이라 여겨 암살한다. 세르비아가 암살배후로 밝혀져 전쟁이 시작되자, 세르비아를 지원하던 러시아가 끼고 영국 프랑스 독일까지 차례차례 합세한다. 마지막 1도가 이렇게 무섭다.


6.


"그래, 앞으로 양말 벗을 때마다 세탁기에 꼬박꼬박 집어 넣을게. 이제 됐어? 정말 사람이 쪼잔하게..."


번지수가 완전히 틀렸다. 마지막 1도에만 집착하느라 그 아래 켜켜이 쌓인 '75,689 빼기 1'개의 사건들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 상대방 원망까지 하고 있으니, 정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7.


사람사이 갈등이 일어날 때, 직접적인 이유 한가지에 너무 집착하면 안된다. 그 한가지 이벤트만 잘 해결되면 만사 OK 원상복구될 수 있다고 믿으면 안된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퇴사하겠다는 김대리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듣는 이팀장은, 앞으로도 좋은 리더가 되기 어렵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불통문제 해결이 어려운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