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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 통하는 원인은 나? 상대방? : 한쪽만 노력하는 짝사랑 같은 소통>
1.
“아무리 큰 소리로 말해도 원치 않는 사람이 듣게 할 수는 없다.
(Speaking loudly does not make the unwilling listener hear.)”
간디의 명언이다. 비폭력주의를 주장한 그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는 소통이 되지 않을 때 억지로 듣게 하기보다 끝까지 상대의 마음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2.
간디는 ‘비폭력(아힘사)’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다. 물리력이나 강압대신 진실과 사랑으로 설득하여 상대방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소통의 실패가 말하는 사람의 설득력 부족이 아닌 듣는 사람의 내면 저항에 있다고 보았다.
소통은 기본적으로 쌍방향 교신이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내가 다가가면 상대가 문을 걸어 잠그고, 상대가 다가오면 내가 마음을 닫는다. 간디는 그 일방통행 상황에서 흥분하지 않고 인내하며 상대방 마음을 움직이려고 애썼다.
3.
둘 중 한쪽만 소통에 관심이 있을 때 그 관계는 마치 짝사랑과도 같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하든 얼마나 진심에서 우러난 행동을 하든, 상대가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면 메아리에 그친다.
간절하게 소통을 원하는 사람은 말할 때나 들을 때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한다. ‘내 설명이 부족했나?’, ‘저 사람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더 논리적인 말을 준비하여 훨씬 친절하게 설명해 보기로 한다. 더 집중해서 경청하면서 질문을 더 많이 던지기로 한다. 다 소용없다. 무슨 수를 쓰든 상대방 철벽방어 앞에 무너진다.
이렇게 무의미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관계에 진심인 쪽은 본의 아니게 점점 소통의 달인이 되어 간다. 어떻게든 상대방 마음의 벽을 뛰어넘어보려고 최선을 다한다.
4.
‘가만있자, 그런데 정말 내 문제가 맞기는 한가?’
어느 순간 불현듯 이런 생각이 스친다.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서 이 관계가 개선되고 나아질 희망이 있을까? 갑자기 의문이 생긴다.
어쩌면 내가 아닌 상대가 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에 대해 더 알아가거나 가까워지길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마음의 문이 뻑뻑한 상태가 아니라 아예 못질하여 문을 막아버렸다면 아무리 좋은 설명이나 정성스러운 경청을 동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서로 손을 맞잡고 싶다는 최소한의 마음이 있어야 소통이 성사될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
5.
인간관계에서는 더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이 항상 약자다.
이미 충분히 마음을 썼다고 생각하면 이제 그만 놓아줄 때도 되었다. 나 자신을 위할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 간디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 상대가 마음을 여는 순간이 오면 그때 반갑게 맞이할 준비만 하고 있자.
*3줄 요약
◯소통은 쌍방향이니 한쪽만 관심을 가지면 짝사랑처럼 무의미한 노력이 반복된다.
◯상대방이 마음의 문을 닫으면 아무리 좋은 설명이나 경청도 소용없다.
◯충분히 노력했다면 자책하지 말고 마음을 거둘 줄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