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2
<누가 큰 소리만 내면 금방 얼음이 되는 이유>
1.
“김대리, 자료정리 좀 제대로 못해요? 엉성하게 이게 뭐예요.”
소심한 김대리가 팀장님 지적에 주눅 드는 모습은 그러려니 했다.
동료의 무례한 발언에도 아무 반박을 못하고 빙긋이 웃기만 하니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속이 다 터질 지경이다.
2.
사람이 위험에 처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대처법으로 2가지가 먼저 떠오른다. 맞서 싸우거나 재빨리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다.
심리학에서는 세 번째 반응이 하나 더 있다고 말한다. 싸울 생각도 없고 도망도 치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음이 되는 모습이다. ‘얼어붙기(Freeze)’라고 부른다.
누군가 함부로 말할 때 김대리가 화를 내거나 대화를 회피하며 자리를 피하기라도 하면 그나마 이해라도 하겠다.
김대리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무기력하게 그 말을 끝까지 다 듣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이 끼어들어 구출해 주어야 비로소 상황이 정리된다. “저는 왜 항상 그런 식일까요.”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자책한다.
3.
김대리가 바보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름 최선의 대처를 한 결과다.
무슨 말이냐면 그 위기상황에서 김대리 뇌가 선택한 최선의 행동이 바로 ‘얼음’이었다는 뜻이다. 즉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의미다.
사실 ‘얼음’ 대처법에는 그 나름의 심오한 원리가 숨어 있다. 동물의 왕국 시대를 가정해 보자. 눈앞의 적과 맞서 싸울 능력은 안 되고 도망쳐도 금방 따라 잡힐 위험이 있다.
보통 동물들이 사냥할 때 죽은 사체는 건드리지 않으니 가만히 멈춰서 죽은 척하는 편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판단이다.
4.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금 김대리 입장이 그 정도라고 보이지는 않는데 왜 저렇게 반응할까.
여기서 그 이름도 유명한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력감’ 이론이 등장한다. 서커스단 아기 코끼리가 밧줄에 묶여 무력하게 지내면 덩치가 커진 뒤에도 그 가느다란 밧줄을 절대 끊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맞서 싸우거나 도망치는 행동은 모두 나의 결정에서 시작된다. 이미 선택을 포기한 사람은 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
통제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반복적으로 자신의 무력함에 익숙해졌으니 성인이 된 후에도 수동적으로 ‘얼음’이 될 뿐이다. 남들이 왜 그렇게 바보처럼 가만히 당하고만 있느냐고 말해도 소용없다. 그들은 지금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낀다.
5.
만약 자신이 무기력한 ‘얼음’ 반응을 자주 보인다면 자책보다 솔루션이 필요하다.
당신이 나약하거나 의지가 부족해서 나온 행동이 아니다. 당신의 뇌가 실제 위험보다 과하게 반응하며 당신을 통제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심호흡 한 번 하고 이성적 사고를 다시 작동시키자. “생각을 좀 해보자, 내가 지금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
*3줄 요약
◯위험상황 속 생존전략은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얼어붙거나’ 3가지다.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반복되면 학습된 무력감에 빠져 늘 ‘얼음’이 되어 버린다.
◯더 이상 ‘얼음’이 되기 싫으면 자책하지 말고 의식적으로 이성적 사고부터 작동시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