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1
<왜 멀쩡한 사람들이 동문서답의 천재가 될까>
1.
A “내일 세탁소에서 드라이 맡긴 옷 좀 찾아줘. 내일은 오전에 문 닫으니까 오후에 가야 해.”
B “그 세탁소는 오전에 왜 문을 닫는데?”
A “드라이 맡긴 옷은 전부 5개야. 괜히 오전에 가서 헛걸음하지 말고.”
이 대화를 너무 자연스럽게 느끼는 사람이 꽤 많다. 소통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지만 어디서 어떻게 엇갈렸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2.
‘남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명제에는 누구나 쉽게 동의한다. 단, 실전에서 행동으로 구현하지 못하니 트러블이 생긴다.
B가 그 세탁소는 오전에 문을 닫는지 물었지만 A는 질문 내용을 무시하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한다. B는 A의 엉뚱한 답변이 답답하지만 중요한 일도 아니므로 그냥 지나친다.
“아니, 내 말은 그 세탁소가 왜 하필이면 내일 오전에만 문을 닫는지 궁금하다고.”
B가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면 어떻게 될까. A는 뒤늦게나마 자신의 소통실패를 깨닫고 다시 정확한 답을 할지 모른다. 또는 끝까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상대를 몰아붙일 가능성도 있다. “왜 그렇게 따지듯이 묻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3.
도대체 우리의 뇌는 왜 이렇게 작동할까. 분명 내 귀에 모든 글자가 또박또박 다 들렸는데 왜 머릿속에서는 엉뚱하게 해석하는지 모르겠다.
세탁소 주제에서만 벗어나지 않으면 주거니 받거니 소통이 잘 된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A는 B가 던진 문장 속에서 ‘오전’에만 반응을 보인 뒤 마음대로 문장을 재구성해 버린다.
‘꼭 <오전>에 가야 하는 거야?’
‘그 세탁소는 왜 <오전>에 문을 닫아서 나를 성가시게 만들지?’
‘오후 말고 <오전>에 문을 닫는다는 말이지?’
A는 이렇게 다양한 여러 문장을 모두 같은 뉘앙스로 감안하고 대충 넘어갈 가능성이 많다.
4.
“이번 분기 매출 목표치를 어떻게 달성할 생각인가요?”
“네, 이번 분기 목표치를 어떻게 산출했는지 말씀드릴게요. 지난 분기에 비해...”
회의시간에 이렇게 대답하는 경우가 흔하다. ‘보고서를 보여드리면 분명히 이 숫자가 어떻게 나왔는지 과정을 궁금해하실 거야.’ 잔뜩 긴장하고 답변을 연습하고 있다가 팀장 말에서 ‘목표치’ 단어만 들리면 옳다구나 하고 외운 문장을 그대로 발사한다.
A를 묻고 A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듣기가 정말 어렵다. A-1이나 A-17처럼 미묘하게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듣는 사람이 대놓고 다시 묻거나 피드백을 주지 않으면 본인은 평생 자신의 안 좋은 대화습관을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나이가 들고 직위가 높아질수록 주변에서 솔직한 피드백을 하기 어려우니 이런 문제는 더더욱 고치기 어려워진다.
5.
“다른 사람은 다 나더러 대화 잘하고 친절하다는데 왜 당신만 나한테 지적질하는 거야?”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사람은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으니 그냥 넘어가지만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에서는 참다 참다 폭발하기 쉽다. 물론 가족으로서 문제점을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는 사명감과 애정도 들어 있다.
소통에 대한 피드백을 듣는다면 저 사람 말이 아닌 내 귀가 잘못되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보자.
*3줄 요약
◯일상 대화에서 질문과 답변이 미묘하게 엇갈리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하다.
◯뇌가 상대방 말의 특정 단어에만 반응해서 자기 마음대로 재해석할 때도 많다.
◯나이가 들고 지위가 올라갈수록 솔직한 피드백을 받기 어려워 이런 습관을 고치기도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