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터지는 오늘 하루, 내일은 소통 한방004
"나쁘지 않다고 하셔서 그냥 통과시켰는데요..."
"아니, 나쁘지 않다는 말이 어떻게 괜찮다는 뜻인가? B급 정도는 되지만 이 내용을 바탕으로 더 좋은 A급 기획안을 고민해 보라는 말 아닌가? 내가 일일이 말로 해야만 꼭 알아듣나!!!"
아침부터 이팀장님에게 한바탕 깨진 윤대리. 잘못하고 혼났으면 억울하지나 않을텐데, 심장이 벌렁벌렁 얼굴이 후끈후끈 뒷목까지 뻣뻣해 집니다. 생각하신 내용이 있으면 딱 부러지게 말씀해주셨으면 좋았을텐데, 적당히 넘어가시고 후폭풍이 너무 황당하네요. 윤대리와 이팀장의 트러블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요?
건국대 신경정신과 하지현교수님이 소통에 대해 강연하신 내용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소통이 잘 안된다며 찾아오신 환자분들 중에는요, 본인이 '어'하면 상대가 알아서 '아' 하는게 당연한데 그게 왜 안되는지 이해가 안간다는 말씀을 많이들 하세요."
덧붙여 재미있는 조사결과를 말씀하시는데요 결혼 5년, 20년, 50년차 부부의 소통을 테스트해보면 예상외로 5년차가 제일 잘 통한다고 합니다. 결혼초반에는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소통에 열심히 신경쓰다가, 어느 순간 고정관념이 생기고 나면 노력자체를 안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누구 앞에서 엉뚱한 말을? 내가 결혼생활 짬밥이 몇년인데, 척하면 착알지. 안봐도 뻔하지 뻔~해..."
때로 CSI수사대처럼 감춰진(?) 진실을 밝히는 효과도 있지만, 괜히 헛다리 짚었다가 큰 싸움으로 번지는 반전이 생기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장 완벽한 소통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엄마 뱃속'에 들어 있을때 입니다. 탯줄로 엄마와 직접 연결되어 있으니 엄마의 심리, 건강, 배고픔까지 완벽하게 실시간 동기화되었던 시절입니다. 하교수님은 그 상황을 '직렬연결'이라고 하시는데, 그 강한 기억이 뇌속에 남아 성장후 남과 소통할 때도 그런 높은 수준의 막연한 기대를 한다고 합니다.
"꼭 말로 해야 아나요? 정말 구차한데요..."
네, 맞습니다. 말로 안하면 절대 모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사람을 처음 만나면 척보고 한눈에 어떤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지만, 남들이 자기를 제대로 알려면 아주 여러번 만나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은 단순하며 쉬운 존재이지만, 나는 복잡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이기적인 착각입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사고방식이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범합니다.
몸이 안좋아 진료를 받으러 오신 김지성님(가명). 가벼운 인사말씀을 건네고 진찰을 시작하려고 하니 아무말없이 원장실 책상위에 오른손을 턱 올려놓으십니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맞춰~ 보시오."
이제 저도 환자진료만 20년차. 1년에 1번 정도는 꼭 경험하는 일이라 이제는 당황하지 않습니다.
진찰없이 진맥만으로 모든 건강상태를 완벽하게 알아낼 재주가 있다면 벌써 노벨상을 탔을 지도 모르지만, 아쉽게도 저는 해리포터가 아닙니다. 하나하나, 꼬치꼬치, 미주알고주알...
여쭤보고 확인하면서 진찰을 해야만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환자분 말씀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종이챠트에 날아가는 글씨로 열심히 받아쓰기하면서 말이죠.
"잠은 잘 주무세요?"
"몇시에서 몇시까지 주무세요?"
"도중에 깨지는 않으시나요?"
"꿈을 너무 많이 꾸거나 뒤척이지는 않으세요?"
"입을 벌리고 주무시지는 않으세요?"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한 느낌이신가요?"
"주무시다가 소변때문에 깨지는 않으시구요?" ...
머리에서 발끝까지 탈탈 털어낼 정도로 질문하고 답을 들어야만 제 마음이 후련합니다. 정확한 소통이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수역 경희은한의원 권영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