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7
<지금 얄미운 상대에게 합법적으로 복수하고 있지는 않은가>
1.
“커피 좀 그만 마셔. 하루에 다섯 잔이나 마시면 몸에 안 좋다고.”
“팀장님, 이제 술 좀 그만 드세요. 그렇게 과음하시면 큰일 납니다.”
언뜻 아무 문제없는 문장이다. 커피나 술이나 지나쳐서 좋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다만 모든 대화는 앞뒤 상황의 전후 맥락까지 살펴보아야 그 취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2.
정말 상대를 위하고 염려해서 하는 말이라면 아무 상관없다. 만일 지금까지 그 행동에 대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지내다가 3일 전부터 갑자기 우다다 퍼붓기 시작했다면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혹시 최근에 그 사람과 무슨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아하, 그러고 보니 며칠 전 크게 한판 붙었다. 그가 큰소리 내면서 나를 들들 볶았다. 내가 잘못한 일이 있었으니 찍소리도 못했다. 그러고 보니 그다음 날부터 상대에 대한 ‘과도한 건강염려’ 멘트가 시작되었구나.
한마디로 지금의 이 멘트는 순수한 마음의 발로가 아니다. 내가 당한 만큼 되돌려주고 싶다는 일종의 보복행위다. 꽁해서 화풀이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상대를 몰아붙일 수 있는 신의 한 수다.
그렇게 ‘너를 위하는 말’로 몰아붙이기 시작한다. 절대 반박할 수 없는 멘트만 골라서 쏟아낸다. 내가 당했듯이 상대를 코너로 몰아붙일 수 있다. 하급자와 자녀가 상급자나 부모에게 이런 전술을 자주 구사한다.
3.
한 마디로 소심한 반항이다. 주로 약자가 강자에게 대들고 싶을 때 이런 방식을 많이 쓴다. 본인 전투력이 딸리고 능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상대와 정면으로 붙어서는 승산이 없다.
게릴라전이 그나마 낫다. 정당하든 부당하든 지금껏 상대에게 억눌리며 지내온 한 맺힌 시간을 어떻게든 풀어내고 싶다. 나도 어떻게든 당신을 통제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는다.
물론 문장자체에 하자가 없으니 상대도 마땅히 반박할 여지는 없다. 하지만 그 미묘한 분위기만은 즉각 느낀다. ‘며칠 전 그 일로 단단히 삐쳤구나. 본인이 잘못했으면서 적반하장으로 나오겠다 이거지?’
계속 치고박는 난타전이 시작된다. 서로 감정만 상한다. 관계는 계속 나빠지고 문제도 개선되지 않는다.
4.
“여보,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까?”
“김대리, 잠깐 커피 한 잔 할까요?”
악순환을 끊으려면 과거 그 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이일수록 얽히고설킨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정면돌파를 시도해 보자.
“그 오래된 이야기들을 다시 꺼낸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요? 새삼스럽게 달라질 일도 없어요.”
선택지는 간단하다. 이렇게 계속 지내거나 무슨 수를 쓰든 달라지길 바라며 애를 써 보거나.
과거에 상대가 나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면 지금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 이전으로 되돌리기는 힘들다. 대신 개선의 의지를 보이며 대화를 시도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운이 좋으면 지금부터 건강한 관계를 새롭게 맺기 시작할 수도 있다. 잘 안되더라도 최소한 시도는 해볼 만하다.
5.
“왜 맨날 그런 식으로 말해. 좀 부드럽게 이야기하면 안 돼?”
누군가 당신에게만 유독 퉁명스럽게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에게 쌓인 원한이 있거나 불만이 많다는 뜻이다.
나도 아쉬울 것 없다는 식으로 똑같이 나가면 그 관계는 그대로 끝이다. 어떻게 결정하든 당신 몫이다.
*3줄 요약
◯공격당한 후 상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지나치게 간섭하면 소심한 보복에 해당한다.
◯게릴라전으로 감정싸움을 이어가면 서로 기분만 상한다.
◯악순환을 끊으려면 용기를 내어 과거의 일에 관한 대화를 시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