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잡화점 847<매의 귀로 듣기>

by 호르몬닥터 권영구

@소통잡화점 847

<매의 귀로 듣기>


1.

“원장님이 너무 잘 진료해 주시니까 일부러 오셨대요.”

자주 오시던 환자분이 원장실을 나가신 뒤, 데스크에서 한참이나 이야기를 하신다. 실장님께 쪽지로 여쭤보니, 흔한 원장님 칭찬이라고 전하셨다.


이상해서 다시 구체적으로 확인하니, 저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코앞에 사는 분인데 ‘일부러’라니.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얼마전 먼 곳으로 이사를 가셨다고 한다.


2.

소통의 종류는 딱 두 가지다. 직접 말을 하거나 아니면 상대의 말을 듣는다. 말하는 사람은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는 그 말을 듣고 의도를 접수한다. 누구든 소통을 잘하고 싶은 사람은, 말하기와 듣기만 연습하면 된다.


다들 말하기는 어렵다고 하면서, 듣기에 대해서는 너무 대충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더니,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리고 부엌에서 엄마의 칼질 소리가 들리는 그런 수준으로 듣기를 하려고 한다. 소통에서 말하는 듣기는, 어떤 소리가 내 고막을 때릴때 그렇구나 하는 수동적인 감각이 아니다. 상대의 말을 대뇌피질로 분석하며 듣고, 그 의미를 재해석하는 적극적인 과정이다.


3.

‘경청’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상대방 말을 열심히 들으려면, 대충 다리 꼬고 앉아 먼산 보면서 들으면 안 된다. 경청할때 다리 꼬지말라, 성장판 닫힌다. 손에는 볼펜을 들고 귀를 쫑긋 세운 뒤, 몸을 상대쪽으로 기울여 단어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애써야 한다. 그 모습이 바로 경청하는 자세다.


사람은 누구나 본 마음을 숨긴 채 페르소나만 드러낸다. 우리는 상대가 감춘 그 가면 속 진심이 궁금하다. 그 누구도 순순히 속내를 고백할 리 없으니 듣는 사람이 귀를 활짝 열고 매의 눈, 아니 매의 귀로 잡아내야 한다.


4.

“자, 범인이 억울하다고 쓴 편지의 일부예요. 그날 밤은 알리바이가 없지만, 그렇다고 대구에 왔다는 증거도 없다고 썼어요. 이상하지 않나요? 정말 결백하다면 대구에 간 적이 없다고 했어야죠.”.

그것이 알고 싶다 박지선교수의 예리한 지적이다. ‘왔다’, ‘갔다’ 단어하나 차이로, 탄원서가 자백진술서로 바뀌는 순간이다. 말하는 사람은 순간적으로 검토에 검토를 거칠 여유가 없다. 아무리 감추려고 노력해도 어디선가 진실이 드러난다.


5.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말하든, 사방팔방 CCTV와 휴대폰 녹음기가 돌아가고 있다. 나는 그렇게 말한 적 없다고 딱 잡아떼 봐야 소용없다. 내 말을 악마의 편집으로 왜곡했다고 우겨보지만, 곧 원본파일이 공개되고 내가 누워서 뱉은 침에 다시 맞는다.


좋은 소통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매순간 상대방 말에 집중하며 제대로 들으려고 노력하자. 내가 말할 때는 늘 허심탄회하게 솔직하면 된다. 속마음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는 대신, 안좋은 마음 자체를 없애보자. 남을 속이려 들지도 말고, 타인을 이용해 나의 이익을 취하려는 음흉한 마음도 먹지 말자. 투명하면 숨길 꺼리도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통잡화점 846 <탑다운 방식만이 능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