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8
<익숙한 불편에 안주할까, 불확실한 가능성에 도전할까>
1.
“미용실 다녀올 때마다 투덜거리지 말고 다른 곳으로 좀 바꿔봐.”
“그래도 몇 가지만 빼면 그런대로 괜찮아.”
참기 어려운 불만이 있을 때 우리는 두 가지 선택지 앞에 선다.
익숙해진 불편을 이대로 견디느냐, 아니면 새로운 불확실성에 도전하느냐.
2.
“불편한데 왜 참아요, 일단 바꾸고 봐야죠.”
“다른 미용실이 낫다는 보장이 있나요? 더 나쁘면 책임지실래요?”
바로 반박이 들어온다. 다른 옵션이 지금보다 확실히 더 좋다는 확신이 있으면 아무도 고민하지 않는다. 그나마 지금 미용실이 85점은 되는데 괜히 100점 기대하고 베팅했다가 70점짜리에 걸리면 더 골치만 아프다는 논리다.
불편과 부조리에 시달리면서도 계속 가만히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기본 심리가 이렇다. 불확실성에 대해 상당히 큰 공포를 느끼며 두려워한다. 실체에 대한 아무 정보가 없으니 추측하기도 어렵다.
이를 ‘현상유지 편향’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웬만하면 관성의 법칙에 복종한다는 뜻이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
3.
불확실성은 양면성을 가진다. 지금보다 나쁠 수도 있지만 더 나을 가능성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만 아니라면 일단 테스트해 보고 다시 결정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안전지향적인 사람들은 그런 사소한 시도마저 부담스러워한다. 아무리 힘들고 괴롭더라도 앞으로 펼쳐질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그려지기만 하면 마음 단단히 먹고 버티려고 든다.
바로 이 관점의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르게 행동한다. 지금 불편을 어떻게든 개선해 보려는 사람과 판을 깨뜨리지 말고 순응하라는 사람이 한 배를 타고 있으니 서로 간에 얼마나 힘들겠는가.
남녀사이, 인간관계, 회사생활, 사회현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충돌의 핵심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여기 있다. 어느 한쪽이 옳다고 말할 수 없으며 절충하기도 어렵다.
4.
“사람들은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잃을 수 있는 부분에 두 배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말처럼 사람은 손실과 위험에 대해 극도로 예민하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희망보다 지금 누리는 현재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훨씬 크다. 위험이 닥치는 순간 낯선 곳으로 도피하기보다 차라리 익숙한 장소에 계속 머무르며 버티는 이유다.
새로운 시도와 기회비용에 너그러운 사람을 ‘개방적’이라고 부른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가능성보다 위협과 불안요소에 주목하는 사람은 ‘보수적’이라고 한다.
개방적인 사람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늘 새로움을 탐구한다. 침대 위치도 이리저리 수시로 옮겨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생겨도 별 거리낌이 없다. 보수적인 사람은 낯익은 환경 속에서만 안주하고 싶어 한다. 우리 반에 누가 전학 오면 한참 동안이나 경계하며 살핀다. 여행지에서도 안 먹어본 음식은 선뜻 주문하지 않는다.
5.
“모든 일을 직접 경험하고 깨달으면 너무 위험하잖아요.”
맞다, 너무 개방적이면 상대적으로 리스크도 커진다. 당연하게도 개방과 보수의 밸런스가 중요하다.
선택의 기준을 정해볼 수는 있겠다. 잘못되더라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되면 한 번쯤 도전해 봐도 좋다. “로또 한 장에 천 원인데 한 번만 해볼래. 꽝이면 그만이고.”
만약 리스크가 어마어마한 데도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집부린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옵션거래 잘 터지기만 하면 떼부자가 될 수도 있다고.” 감당 못할 리스크를 무시한다면 그저 무모함에 지나지 않는다.
*3줄 요약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불편해도 익숙한 쪽을 선택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얻을 것보다 잃을 것에 두 배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는 도전해 보고 치명적인 손실이 예상되면 신중하게 판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