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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접시를 깨뜨릴 때다>
1.
“1년 내내 정신없이 뛰어다녔는데 왜 이리 허무한지 모르겠어요.”
사무실에서나 가정에서나 숨 쉴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았다.
연말이 다가오며 한 해를 결산하다 보니 너무 공허한 느낌이다.
2.
뼈를 갈아 넣으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연말이 이렇다. 맡은 역할 중 어느 하나도 펑크를 내지 않으려고 새벽부터 밤까지 아등바등 기를 쓰고 살았다.
서커스에서 쇠막대 여러 개 위에 놓인 접시를 돌리는 기분이다. 하나도 깨뜨리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보는 사람도 조마조마할 지경이다.
“올해 1년 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
12월 말 쇼가 끝날 때 모든 접시를 손에 들고서 완벽하게 공연을 마무리하면 다들 박수를 친다.
멋지게 미션을 완수한 자신의 모습이 대견하다.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하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자기학대적인 노동’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3.
어느 순간부터 회사에서나 가정에서나 나에 대해 고마워하지도 않는 눈치다. 처음부터 접시 여러 개를 동시에 돌리기로 계약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어쩌다 접시 하나라도 깨뜨리면 상대는 인상 팍쓰며 짜증을 낸다.
“미안해, 요즘 내가 일이 너무 많아서 깜박했어.”
“감당하기 어려우면 애초에 맡지를 말았어야지, 이게 뭐야!”
이런 말을 들으면 서운하고 눈물이 난다. 나는 모두를 위하는 마음으로 나를 버리고 희생했을 뿐이다. 고작 이런 대접받으려고 그 생고생을 했던가.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보자. 그들이 나에게 그런 역할을 강요한 적이 있었던가. 내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십자가를 떠 안지는 않았나.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책임감과 완벽주의 성향에 굴복해 자발적으로 손들고 나선 결과는 아니었을까.
4.
과도한 책임감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종종 어린 시절 상처의 지배를 받고 있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결핍이 지나친 헌신으로 드러나는 유형이다. 울고 있는 자기 안의 어린아이를 나름의 방식으로 구원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늘 착하다는 말로 가스라이팅을 당해 온 사람 역시 무한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거절하면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두려워한다.
자, 이제 접시를 깨뜨릴 때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황당한 표정 짓지 않아도 된다. 따지고 보면 그중 몇 개는 처음부터 당신 접시도 아니었다. 충분히 거절하고 내려놓을 수 있었던 부탁들이다.
지금 당신 모습을 돌아보라. 몸이든 마음이든 어디 한 곳 성하기라도 한가. 끝도 없는 자기 학대는 이제 그만하자.
5.
“아싸, 이제 대충대충 살려고요.”
단, 조심할 부분이 있다. 깨뜨려도 될 접시인지 아닌지 잘 구별하자. 엉뚱한 접시를 깨뜨리면 대박사건이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을 정확히 알고 그 나머지를 버리는 ‘전략적 포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처음에는 낯설고 마음이 불편하다. 그 죄책감을 떨쳐낼 때 비로소 당신만의 소중한 삶이 시작된다.
*3줄 요약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려 애쓰면 몸도 마음도 지쳐 버린다.
◯과도한 책임감은 어린 시절 상처나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때에 따라서는 전략적인 포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