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4
<부탁할 때 쓰는 긍정의 단어가 결과를 바꾼다>
1.
A. “오뎅 국물 같이 좀 주실 수 없을까요?”
B. “오뎅 국물 조금만 넣어주실 수 있을까요?”
거의 비슷한 문장이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게 들린다.
A처럼 물으면 안 된다는 대답이 너무 쉽게 나오고, B처럼 물으면 웬만하면 통과다. 무슨 차이일까.
2.
누구든 부탁을 받으면 일단 ‘귀찮다’는 생각부터 든다. 꼭 수행해야 할 의무사항이면 상대가 이렇게 내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 이 일은 들어주든 거절하든 순전히 내 마음이라는 뜻이다.
그 찰나의 귀차니즘이 미묘하게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지는가에 따라 결과가 좌우된다. 아슬아슬한 그때 ‘할 수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냉큼 그에 편승한다. “네, 안됩니다.”
반면 B 같은 긍정문을 들으면 거부하기 어렵다. 상대가 한 말을 억지로 받아치면서 거절을 해야 하니 몹시 부담스럽다.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닌데 그냥 들어주고 말기로 한다.
이처럼 가는 말과 오는 말은 서로 쌍을 이룬다. 내가 먼저 곱게 말하기만 해도 상대가 괴팍한 표정을 지으며 이상하게 반응하기 어렵다.
3.
공손하고 친절하게 표현하려고 부정의 단어를 꺼내면 곧 듣는 사람 머릿속에 거절의 신호등부터 켜진다. ‘~할 수 없을까요.’하면 처음부터 안된다는 전제하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본인조차 그다지 의지가 없는데 듣는 사람이 구태여 수고를 감수하면서 까지 편의를 봐줄 필요가 있겠는가. 애원해도 들어줄까 말까다.
“그렇다고 무작정 해달라고 하면 너무 무례하지 않을까요?”
무례는 말의 내용이 아닌 태도에 달려있다.
반말 쓰지 않고 공손하게 예의를 갖추어 이야기하면 충분하다. 이렇게 말하면 상대가 들어줄 수 없는 일이라도 어떻게든 해결해주고 싶어진다.
4.
“그날은 제가 선약이 있어서 곤란한데요, 혹시 화요일 오후로 옮기면 안 될까요?”
“아, 화요일은 좀 바쁜데요.”
“그럼 목요일 오전은?”
“목요일이라... 그렇게 하죠, 뭐.”
곤경에 처하면 무의식 중에 새로운 제안을 하고 상대에게 허락을 구하는 패턴으로 흐르기 쉽다. 겨우 OK 사인을 받으면 한숨을 내쉰다.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비굴할 일이었나 싶기도 하다.
이제 시각을 바꾸어 보자. 나의 어려움을 설명하기만 하고 결정권을 상대에게 넘기자. 상대방은 나의 난처한 상황을 모두 들었으니 어떻게든 잘 해결해야겠다는 의무감을 가진다.
“그날은 제가 어머니 모시고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이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러셔요? 할 수 없네요. 그럼 목요일은 괜찮으신가요?”
“좋습니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5.
내가 주도권을 넘기는 순간 상대는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책임자가 된다. 이제 더 이상 나의 문제점에 대해 너그럽게 허락하고 이해해 주는 고압적인 입장이 아니다.
처음부터 안될 거라며 포기해 버리거나 대안은 무조건 내가 제시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빠지지만 않으면 괜찮다.
이런, 바로 위의 문장에도 ‘포기’, ‘고정관념’, ‘않으면’ 부정의 단어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
*3줄 요약
◯부탁할 때 긍정문으로 물으면 상대가 거절하기 어려워진다.
◯자신이 처한 곤경을 설명하고 상대에게 판단을 맡기면 공동 책임자가 된다.
◯같은 요청이라도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상대의 심리적 반응은 완전히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