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0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의 진실>

by 호르몬닥터 권영구

@1530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의 진실>


1.

“죄송합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멘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딘가 좀 이상하다. 내가 상대방 때문에 불편을 겪었는데 오히려 본인이 피해자인 척 말하고 있다.


2.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잘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얼핏 들으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이런 결과를 피하기 어려웠다는 의미 같다.


혹시 자기가 손해 보지 않는 가장 편한 쪽을 골라놓고 구차하게 변명하는 상황은 아닐까.


“미안해, 꼭 사야 할 책을 서점에서 사 오느라 좀 늦었네.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늦었으면 책은 좀 나중에 사지 그랬어? 오늘 엄청 중요한 자리였는데.”

“내가 왜? 오늘 안 사면 나중에 또 여기까지 와야 한단 말이야.”


듣다 보니 괜히 화가 난다. 본인이 귀찮고 번거로운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말을 어쩌면 저렇게 대놓고 할 수 있는가.


3.

이런 변명은 어떨 때 주로 하게 될까. 여러 사람, 여러 일이 겹칠 때 우리는 우선순위를 따져본다. 더 중요하고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하고 나머지 일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바로 그때 순위가 밀린 사람에게 슬쩍 변명을 늘어놓는다. 한마디로 누군가 내게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면 내가 그에게 덜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고 있다면 더더욱 확실하다.


운동할 시간이 없다, 공부할 시간이 없다, 잠잘 시간이 없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도처에 널려 있다. 휴대폰 쇼츠 시청 시간이 3시간 27분으로 나오는 상황인데 과연 그 말에 신뢰가 가겠는가.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나보다 다른 일을 먼저 골랐을 뿐이다.


4.

하기 싫고 귀찮은 일이 생길수록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구멍을 떠올린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무조건 찾아내고야 만다.


누가 들어도 태클 걸기 어려울 만한 구실을 찾아 불가피하다고 우긴다. 기꺼이 그 일을 맡아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해본 적도 없다.


“저도 휴일에 쉬고 싶어요. 왜 저한테 그런 수고를 하라고 하시나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런 대답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즉, 할 수 없는 일이어서 못했다기보다 본인에게 무리가 되고 귀찮으니까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의미다.

5.

가끔은 진짜 어쩔 수 없는 딜레마의 순간이 닥치기도 한다. 판단 기준은 간단하다.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불편은 누구의 몫이었을까?” 내가 귀찮아서 피한 선택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세상에 절대 안 되는 일은 의외로 그리 많지 않다. 정말 간절하다면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


만약 상대가 아닌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고 싶다면 비겁한 변명 대신 솔직한 사과를 전하자. “미안해, 몸이 너무 힘들어서 이번 주말에는 좀 쉬고 싶어.”


*3줄 요약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나 대신 다른 선택지를 먼저 골랐다는 뜻이다.

◯변명을 자주 듣는다면 당신은 이미 그 사람의 순위권 밖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면 구차한 핑계보다 솔직한 사과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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