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잡화점 859
<실망보다 후회가 나쁜 이유>
1.
“이번 입찰은 우리가 꼭 따낼 줄 알았는데...”
“이번 입찰은 지원서를 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숨은 그림 한번 찾아보자. 비슷비슷해 보이는 이 두 문장의 차이를 알아차린다면 당신은 이미 고수다. 앞문장은 실망이고 뒷문장은 후회다. 실망과 후회는 어떻게 다를까.
2.
실망은 내 힘으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다. 소풍전날 친구들과 놀 생각에 밤잠을 설쳤는데, 아침부터 장대비가 주룩주룩 창문을 때릴 때 바로 그 심정이다. 소풍 날짜를 내가 정하지도 않았고, 내 힘으로 비를 멈추게 할 능력도 없다. 그냥 ‘실망’스럽다.
혹시나 하고 좋은 운을 기대했다가, 아쉽게도 결과가 기대치에 못 미쳐 마음이 안 좋은 상황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내 잘못은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지 고민할 여지가 전혀 없다. 내가 실망하는 상황은 내게 아무 선택권이 없었던 수동적인 입장이었다고 보면 된다.
3.
후회는 다르다. 소풍날 친구들과 수건돌리기 하며 신나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아침에 엄마가 일기예보 보고 오후에 비 올지 모르니, 우산 꼭 가져가라고 하신 말이 떠오른다. 비쫄딱 맞고 신발까지 축축하니 너무 ‘후회’된다. 엄마말 들을걸.
지금 이 사태를 피할 기회가 있었다. 우산 챙기기 귀찮은 마음에, 또는 반항하는 청개구리 본능으로 엄마 조언을 무시하고 따르지 않은 결과다. 이렇게 해가 쨍쨍 인데 비는 무슨 비, 괜찮을 거야... 괜찮아야 해... 어설픈 기대를 품었지만, 머피의 법칙은 인정사정없다. 안 풀어본 문제집에서 꼭 시험문제 나온다. 누군가 CCTV로 나를 지켜보고 있다가 일부러 골탕 먹이는 기분이다.
4.
후회의 끝은 결국 자책으로 이어진다. 기출문제집 다 풀고 시험 볼걸, 지난번 보고서 한번만 더 읽어볼걸, 술을 조금만 덜 마실걸. 자책은 자기 책망이다. 내가 나를 야단치는 순간이다. 누구한테든 야단맞으면 기분이 나쁜 법이니, 자책을 해도 마음이 별로 안 좋다.
남이 나를 평가하고 무시하면 그래도 극복하기 쉬운 편이다.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고, 그의 말이 다 맞다는 보장도 없다. 자책은 다르다. 지구상에서 가장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하에, 내 잘못을 내가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빼도 박도 못하는 팩트폭행이다.
5.
자책을 자주하면 점점 자신감이 떨어진다. 내가 봐도 내가 찌질하다는 생각이 들면, 아무 노력도 하기 싫다. 그냥 주저앉아 울고만 싶다. 이럴 때는 남이 위로하기도 어렵다. 내 잘못을 나 스스로 제일 잘 알고 있으니, 그 무슨 말을 들어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어요. 결과는 운에 맡겨야죠.”
대학합격자나 스포츠대회 우승자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내 행동을 완벽하게 해냈으면, 이제 아무 ‘후회’가 없는 단계에 이른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후회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데 안하거나 못한 행동이 없으니, 이제 하늘을 우러러 한줌 부끄럼이 없다. 경기에 져도 어깨 펴고 당당히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