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잡화점 864 <실력대로 대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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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대로 대접받는다>

1.

“나 지금 침집에 왔어, 침 맞고 갈게.”

20년 전 개원 초에는 환자가 원장실에 들어온 뒤에도 전화가 오면 다 받았다. 심지어 침집 한약방 같은 단어도 대놓고 말했다.


발끈하지 않았다. 진료를 시작하고 내가 가진 실력을 모두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병원이니까 진료끝나고 전화할게.” 다음날부터 태도가 싹 바뀐다.


2.

독사 마귀할멈 악마... 중고등 아이들은 선생님 성함을 제대로 부를 일이 거의 없다. C등급 판정받은 분들은 거친 별명으로 불렸고, B등급 정도 되면 그나마 국B, 국사 같은 과목명이다. 호칭 외에도 존댓말은 찾아볼 수 없고, 마치 친구를 지칭하듯 함부로 소환한다.


그 와중에 연꽃 같은 분이 꼭 한분씩 계신다. 수업시간마다 엎드려 자고, 시험점수에는 관심도 없는 영철이 마저 깍듯하게 대한다. 90도 폴더인사는 기본에, 친구끼리 말할 때도 아.무.개. 선생님으로 정확히 말한다. 공부도 잘 가르치시고 아이들에 대한 애정까지 올백이다. 실력대로 대접받는 법이다.


3.

“저, 잠깐 말씀 좀 여쭤볼게요. 시청역 가려면 어디서 내려야 할까요?”

지하철에서 머리 희끗한 할머니가 25살 젊은이에게 공손히 질문한다. 젊은이는 스마트 폰을 꺼내들고 한참 검색한 후 열심히 설명한다.


‘아~’ 소리가 안 나오자, 할머니 폰을 받아들고 지하철앱 어플을 깔아드린 뒤 사용법을 다시 설명해 드린다. 그래도 반응이 시원찮으니 마지막 멘트가 나온다. “제가 그 근처까지 가니까 저랑 같이 가세요.” 나이 많은 분이 젊은 사람에게 함부로 반말하지 않고 공손하게 묻는 인격도 실력이다. 길을 물을 때도 실력대로 대접받는다.


4.

“분명히 아아를 시켰다니까요. 왜 라떼가 나온 거예요?”

아까 주문받은 알바는 퇴근했고, 지금 알바는 영문도 모른 채 쏟아지는 속사포를 온몸으로 맞고 있다. 큰소리에 욕설까지 난무하니 옆에서 듣기 민망할 정도다.


사과를 해도, 다시 뽑아드린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자기 분에 못 이겨 10분이 넘게 계속 큰소리로 1인 시위 중이다. 알바생은 미소를 잃지 않고 끝까지 친절히 응대한다. 마침내 아아가 완성되었다. “내가 원래 다혈질이라 욱하는 편인데, 그 말을 다 듣고 있어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내가 잘못했어요. 명함드릴테니 나중에 연락한번 하세요.” 프로다운 포지션도 실력이고, 실력대로 대접받는다.


5.

왜 사람들이 나에게 함부로 대할까 고민스러울 때가 있다. 내 실력을 몰라주고 무시하니 서럽다. 슬퍼할 필요 없다. 다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다. 사람들은 누구나 귀신같이 실력을 알아본다. 나 스스로 실력이 좋다고 착각하고 있었을 뿐, 객관적인 전투력이 아직 부족하다.


가끔, 아주 가끔은 제대로 된 실력자를 남들이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다. 바로 그럴 때 광고 홍보가 필요하다. 방구석에 처박혀 희대의 명곡 5천곡을 작곡했다고 한들, 사람들은 하나도 모른다. 길거리 버스킹이라도 해야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다. 나는 과연 숨은 실력자인가, 아니면 실력자대접만 바라는 가짜실력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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