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잡화점 862 <낯선 사람과 대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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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과 대화하기>


1.

“어휴, 선이요? 소개팅이요? 생각만 해도 오글거려요.”

겉으로는 주선 받는 자리가 어색해서 자연스런 만남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실은 처음 보는 사람과 말 섞는 그 자체가 너무 부담스럽다. 게다가 상대가 이성이라면, 차라리 입사면접을 한 번 더 보는 편이 낫겠다.


2.

낯선 사람과 마주하게 되면 어느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도 상대가 퉁명스럽게 나올 수 있고, 딴 세상에 사는 종족이라 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 오며가며 우연히 만난 사람이 운명적인 사랑 또는 절친이 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거절당하고 실망하는 일은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한부분이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자. 나에게 상대가 부담스러운 만큼, 상대도 나에 대해 조심스럽다. 서로 탐색전 펼치느라 두발 멀리 떨어져 눈치만 보는 중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먼저 다가서지는 못하지만, 누군가 다가오면 기꺼이 두팔 벌려 이야기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 서로 기다리기만 하면 막차 놓친다. 먼저 작은 용기를 내자.


3.

이빨에 고춧가루 끼었다는 말도 서슴없이 주고받는 미숙이나 영철이도 처음에는 낯선 사이였다. 한번 유리벽이 깨어지자 이렇게 좋은 사이가 되었다. 낯선 사람과 이야기 나눈다고 무조건 연인이나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버리자. 얼굴보고 지내는 사이에 원만한 인간관계를 만들면 충분하다.


같은 사무실 3년을 근무해도 서로에 대해 아무 정보도 없는 상황을 쿨하다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어차피 1년 뒤에 다른 회사로 옮길 생각이라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도 있겠다. ‘이 사람은 내가 평생 알고 지내도 될 만한 사람이니, 친절하게 잘 대해야지.’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상대는 당신이 사람 대하는 태도를 오래 지켜보며 진작 정나미 떨어졌다.


4.

메인음식 전에 가벼운 애피타이저를 먼저 먹으면 소화가 잘된다. 거래처 김부장님과 계약 건으로 만났든, 다른 나라 대통령과 휴전협상으로 만났든, 시작은 스몰토크로 가볍게 하면 좋다. 편하게 몇 마디 오가기만 해도, 상대는 더 이상 낯선 사람이 아니다.


나만의 레퍼토리 몇 가지를 미리 준비해 놓으면 좋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늘 써먹을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면, 초면에 슬쩍 한마디 건네며 살얼음을 부술 수 있다. 날씨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잘 통한다. 스포츠나 무겁지 않은 시사뉴스도 좋다. 붙임성 좋은 김대리는 아침 출근길에 신문을 주욱 살펴보며, 그날 써먹을 화젯거리를 머릿속에 차곡차곡 저장한다.


5.

내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는 대부분 낯선 사람이다. 게다가 나이 직업 출신 배경 취향까지, 전혀 딴판인 사람들이다. 미팅같은 어색한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삼사십 분 짧은 시간이내에 모든 작업을 완수해야 한다. 환자분의 건강정보를 듣고 나름의 판단을 내린 뒤, 내 결정을 잘 설명하고 납득까지 시켜야 한다. 미션 임파서블이 따로 없다.


“설문지보니까 코로나뒤끝에 잔기침을 오래 하셨군요. 잠도 못 주무시고 너무 힘드셨겠어요.”

낯선사이에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취조하듯 몰아붙이면 될 일도 안된다. 처음에 한마디 툭 던진 뒤에는 상대방 대답의 말꼬리만 좇아 다닌다. 환자진료 26년 하다 보니 큰 그림은 이미 머릿속에 다 있다. 두서없이 맞아맞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진료가 완성되어 있다. 낯선 사람일수록 한발 더 다가서서 한마디 한마디 집중해야 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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