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잡화점 868
<아는 의사가 좋은 이유>
1.
“아무개 환자 아시죠? 그 분 소개로 왔어요, 잘 좀 부탁드려요.”
26년째 환자를 진료하다보니 아무 소개 없이 길가다 척보고 들어오는 환자가 손에 꼽을 정도다.
세상이 험악하고 불신이 팽배하다보니, 어느 업종이든 아는 사람부터 찾는다. 이 정도 연줄이면 적어도 나한테 사기는 치지 않겠지 하는 최소한의 보험이다.
2.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인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치료가 달라지는 일은 없다. 불친절하게 구는 환자분이라고 설사 약재를 과하게 넣을 리가 없으며, 상냥하다고 해서 기침가래약을 더 많이 쓰는 경우도 없다.
간혹 고민되는 순간이 있다. 이렇게 치료하면 분명 괜찮을 텐데, 약간의 위험부담이 있는 경우다. 어느 정도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있거나, 치료비가 더 들어갈 수도 있다. 다른 방법에 비해 장점이 많아 비교우위는 확실하다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 뒷감당할 일이 생기면 어쩌나 주저하게 된다.
3.
어느 변호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패소가 확실하여 수임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건이었다. 의뢰인 부모가 찾아와 그 변호사와의 개인적인 과거사를 늘어놓는다. 아주 오래전 변호사가 난처할 뻔한 상황에서, 그 부모가 별 문제 삼지 않고 양해하며 넘어갔던 일이 있었다. 세상 참 좁다.
은혜 갚는 심정으로 그 사건을 수임한 뒤,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한다. 발뒤꿈치의 때만큼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포인트를 샅샅이 뒤진 결과, 마침내 예상을 깨고 재판에 승리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했으면 되지 않느냐며 가볍게 이야기할 부분은 아니다. 100시간을 써서 조사해도 답이 없더라며, 비용을 청구하면 누가 내겠는가. ‘아는 변호사’가 아니면 이런 식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4.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다. 설명을 들을 때는 다 수긍하지만, 본인 이해관계가 얽히면 눈빛부터 변한다. 수술 전 부작용에 대해 누구나 별 생각 없이 싸인을 하지만, 그 0.0001% 확률이 실제로 우리 가족에게 일어나면 아무도 가만있지 않는다.
카센터에서 차량 정기점검을 진행하다 엔진의 치명적인 결함을 발견하여 밤을 꼬박 새워 다 고쳤다. ‘감사해요.’ 말 한마디 외에 그 밤샘수고에 대한 비용지불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어쩔 수 없이 서로서로 자기 몸부터 사린다. 욕먹지 않을 만큼 최소한의 계약만 이행하려고 한다. 무조건 안전빵이 제일이다.
5.
팁 하나 방출한다. 조금 까다로운 문제로 전문가를 만날 일이 있다면, 이 멘트를 써보면 좋겠다. “저, 혹시 선생님 어머님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하시겠어요?” 너무 식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문가 입장에서 그 위력은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한다.
‘이 약 한번 잡솨봐, 고혈압 당뇨 폐암 싹 다 고쳐요.’ 시골장터 사이비 약장수라도 ‘어머니’ 이름 석 자 앞에 태연하게 뻔뻔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분전까지 듣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후 감수해야 하는 위험과 비용을 놓고, 신중하게 선택만 잘하면 된다. 좋은 것은 번거롭고 까다로우며 더 비싼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