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잡화점 870 <차마 거절 못하는 이 마음>

by 호르몬닥터 권영구

@소통잡화점 870

<차마 거절 못하는 이 마음>

1.

“김대리, 오늘 야근 좀 대신해 줄 수 있어요?”

“진짜 미안한데 김대리, 50만원만 좀 빌려주세요.”


국가대표 동네호구 김대리다. 아쉬운 일이 생기면 누구나 김대리부터 떠올린다. 부탁만 하면 성공률 100%를 자랑한다. 대신해준 야근이나 빌린 돈을 되갚지 않아도 절대 독촉하지 않는다. 다들 이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단언컨대 김대리 때문이다.


2.

김대리도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오죽하면 나한테 이런 부탁까지 할까 싶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한 번 두 번 들어주기 시작하니, 작은 눈덩이가 어느새 집채만 해졌다. 이건 아니다 싶은 순간도 있지만, 차마 거절의 말을 입 밖에 내기 어렵다. 내일부터 당장 나를 따돌리기 시작하고, 탕비실에서 뒷담화를 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거절을 잘할 수 있을까요?”

김대리가 큰맘 먹고 상담을 요청한다. 거절의 테크닉이 부족하니, 대화법만 배우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멘토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천천히 말문을 연다.


3.

“거절 못하는 이유는 기술부족이 아니에요. 김대리 본인이 마음 편하려고 스스로 선택한 도피의 방법이죠.”

나 스스로 이 부담을 자초했다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김대리는 어이가 없다. 내가 좋아서 밤늦게 까지 야근을 대신 해주고, 받지도 못할 피같은 돈을 계속 빌려주고 있다고?


일종의 ‘착한아이 신드롬’이다. 거절하면 나쁜 사람이니 No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에 빠져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남눈치만 보며 사는 중이다. 내가 손해보고 피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마음 불편하게 지내는 쪽보다 백번 낫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선택한 대안이 맞다.


4.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이세요? 주위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몇 명 있고, 미워하는 사람도 일부 있어요. 나머지 대부분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아무 신경도 안 써요.”

알랭 드 보통의 충고에 귀 기울여 보자. 당신이 남의 부탁을 힘들게 들어주든 어렵게 거절하든, 남들은 그냥 남이다. 당신을 더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댓가없이 야근을 대신해 준 이대리와 50만원 빌려주고 3년째 못 받고 있는 박대리가, 그날 이후 당신의 절친이 되었는가. 오히려 당신을 더 피한다. 언제 갚으라고 할지 모르니, 당신에게서 한발 더 멀리

떨어져 걷는다. 자, 당신이 만일 그들의 부탁을 거절했을 때, 과연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빴을까?

5.

거절은 단호해야 한다. 일정을 확인해보고 시간여유가 생기면 들어주겠다는 말은 안 된다. 안 된다는 메시지는 확정적으로 하되, 그 앞뒤로 상대를 배려한 양념멘트만 덧붙여야 한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될 것 같은 여지를 던지는 순간, 상대는 늑대눈빛으로 변해 그 빈틈을 물고 늘어진다. “아잉, 이번 딱 한번만. 정말정말 부탁해.”


거절이 일으키는 트러블상황은 다름이 아니다. 당신이 마음속으로 느끼는 불편감, 딱 한가지뿐이다. 부탁을 들어주든 거절하든 당신의 선택이지만, 이 행동으로 상대에게 더 큰 사랑을 기대한다면 꿈 깨라. 당신과 그 사람의 인맥잔고를 따져보고, 그간 쌓은 신뢰자금 일부를 인출할지 말지만 결정하면 된다. 잔고보다 인출이 크면 당신 마음은 하루아침에 부도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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