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잡화점 874 <느리더라도 확실히 성장하는 법>

by 호르몬닥터 권영구

@소통잡화점 874

<느리더라도 확실히 성장하는 법>


1.

“권원장, 오랜만이야. 자네가 여성질환 호르몬 갑상선 위주로 진료하지?

이러이러한 환자분이 오셨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는 동료에게 이런 전화가 오면 최선을 다해 설명하지만, 환자분 진료를 안본 상태로 구체적인 치료법까지 말하기는 어렵다. 십중팔구 상대방은 화를 낸다. “노하우 알려주기 싫어서 비싸게 구는 거지? 흥!!”


2.

처음 환자를 볼 때 나도 무척 당황했다. 책에 나오는 대로 대처하면, 세상 모든 환자를 다 고칠 줄 알았다. 실전은 이론과 달랐다.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경험하지 못했거나 자신 없는 환자는 무조건 다른 곳으로 보냈다. 대학병원으로 보내기도 하고, 선배에게 넘기기도 했다. 그 환자에 대한 내 전투력이 80점이라고 생각되어도, 미련 없이 100점을 향해 토스했다.


대신 그대로 주저앉지는 않았다. 나중에 다시 환자분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치료하셨는지 꼭 확인했다. 대학병원에서 무슨 검사를 하셨고, 어떤 수치가 나오셨는지, 치료는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일일이 여쭤보았다. 내 예상과 맞기도 하고 새로운 사실을 듣기도 했다. 또 찾아보고 또 공부했다. 어느 순간 대학병원에서 낫지 않거나 다른 한의원에서 못 고친 환자들이 나에게 오기 시작했다.


3.

“점점 나아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어요.”

신입으로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안할 때가 많다. 누군가 먼저 다가와 하나하나 일러주며 자상하게 챙겨주는 일은 없다. 폐기용 서류 스테이플러 뽑아 이면지함에 넣거나, 정수기 물통 갈아 끼우는 일이 주요 업무가 된다.


나아지고 싶으면 내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다들 자기 앞가림하기 바쁜데, 누가 피같은 자기시간 쪼개어 나를 도와주겠는가. 열심히 일하는 선배에게 냉커피 타다 바치고, 도와드릴 일 없는지 여쭤보며 근처에서 알짱거려야 한다. 물론 일없으니 편하고 좋다는 주의라면 계속 그렇게 지내도 좋다. 선택은 자유다.


4.

“우리 애가 이번에 회사 인턴근무를 하게 됐어요. 원장님 안목이 좋으시니, 저희 아이 사회생활 처음 하는데 도움될 말씀 좀 해주세요.”

어느 환자분이 아들을 데리고 와 진료를 보신 뒤, 근무멘토링을 해달라고 하신다. 의료인 후배는 아니지만 업무와 행정의 프로세스는 어디든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누가 챙겨주기 전에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면 좋아요. 선배들이 다 좋게 볼 거예요. 참, 복사심부름 시킨다고 투덜거리지 말고, 복사기 돌아가는 동안 그 서류내용 꼭 읽어보세요. 서류 갖다드리면서 질문 하나씩 하구요.”

얼마 뒤 복사용 서류에서 읽은 내용에 대해, 회의시간에 질문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팀장님 눈 번쩍.


5.

만일 내가 눈앞의 이익을 위해 완성도 80점짜리 진료를 반복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 이 순간을 비롯해 앞으로도 영원히, 나는 80점짜리 인생만 살았을 듯하다. 천천히 가더라도 그 20점 차이를 한번 채워보자는 마음을 먹으니, 의외로 빨리 100점 근처로 올라설 수 있었다.


나에게 환자를 보내거나 질문하면, 나는 꼭 장문의 메일로 피드백을 한다. 한번은 같은 학교 출신도 아닌 어느 한의사분이 질문을 하셨다. 평소 하던 대로 답장을 보내드렸는데, 꽤 감명 깊으셨나 보다. 커피쿠폰과 함께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보내셨다.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결국 정상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빠르고 늦고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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