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계약

최저임금으로 노래하다.

by 죠세핀
8온즈 꿀병 (230gm 정도)

몇 달 전, 남편과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걸어 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전시장에 들어가 구경했던 적이 있다.

그때 찍은 딱 한 장의 사진이 바로 이 10억짜리 꿀 한 병이다.


처음엔 이 꿀병을 보고 시식용인 줄 알았다.

시식해 보려고 가까이 간 순간, 꿀병이 '작품'이라는 것과 가격이 10억이라는 작품설명을 보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던 나를 기억한다. 무엇보다 그게 왜 10억이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보고 많은 생각이 있었는데 그걸 공유해볼까 한다.


꿀 한 병, 약 240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꿀벌의 노동이 11,350시간 필요한데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에서 일하는 테크업계에 종사하는 엔지니어들의 기본 연봉을 시간당 페이로 계산해 보니 한 시간에 95불이라는 값이 나와

$95 x 11,350=$1,078,350


원 밀리언, 즉 10억이라는 값이 나왔다는 것.


내년 초에 이곳에서 하게 된 오페라가 있다.

로컬 local 작은 오페라단으로 나는 주역의 cover role을 맡게 되었다. 커버라고 하면 오케스트라에서 말하는 썹, sub(substitute)과 같은 건데 공연 당일 principle 즉, 주역이 몸이 좋지 않아 공연을 하지 못하게 될 경우, 대신 연주하는 일종의 백업의 역할이다.

페이는 principle 프린서플 보다 못하지만 똑같이 악보를 익혀야 한다. 언제 프린서플이 아프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항시 대기해야 하므로.

작은 로컬 오페라라 재정은 열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서고 싶어 오디션을 보러 오는 성악가들로 경쟁률은 치열하다.

cover 페이와 principal 페이, 둘 다 알게 되었다.

물론 principal 페이가 더 많은데, 저 꿀병을 보고 나는


principle pay 나누기 스테이징 리허설 총 시간 (매일 하루 3시간씩 한 달 동안)을 해보게 되었다.


음. 하하. 허허허...


진작에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 나왔다. 시간당 페이가 말이다.

사실 악보를 공부하고 외우는 시간은 저 총시간에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그 시간까지 계산할 경우, 시간당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금액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오페라에 나오는 롤 role 역할이 내 목소리에 맞고 내 커리어를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오디션을 보고 롤을 따내고 싶어 한다.

돈을 생각한다면 예술은 분명 가까이하기 어려운 세계이다.

왜 '예술가는 가난하다' '가난해야 예술가다'라는 말들이 괜히 있겠는가.

돈은 다른 곳에서 벌고, 거기서 번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예술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한 과정에서 결국 예술의 길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내가 좋아하는 예술로 돈까지 잘 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일까!


꿀을 만드는 과정을 검색해 보니 꿀벌들의 노력이 어마어마하다.

꿀을 먹을 때 그러한 꿀벌들의 노력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하지 않았는데, 10억짜리 꿀 한 병을 보고 나서 달콤한 꿀 한 숟가락을 떠먹을 때마다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내가 하는 노래와 시간당 페이를 자꾸 비교해서 떠올리면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작품이나 작은 생물의 노고를 잊지 않고 당연한 게 당연한 게 아닐 수 있다는 시사점 (누가 알겠나, 나중에 자연꿀을 10억 주고 먹게 될지?)을 던져준 작가에게 신선함과 고마움을 느꼈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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