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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아 Apr 22. 2022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알지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냐’라는 말이 있다. 나는 슬프게도 먹어봐야 아는 쪽이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남들이 뭐라고 해도 일단 해봐야 한다. 조금이라도 발을 담가봐야 좋은 건지 나쁜 건지가 가늠된다. 이런 인생은 속도가 느리고 비효율적이지만, 놓고 온 게 있어서 뒤로 돌아가거나 후회를 남기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다.


지족리에서 독일마을 쪽으로 가는 남파랑길 39코스를 걸었다. 하동균중화요리에서 짜장면과 유자탕수육을 먹고 남은 탕수육 포장이 배낭 안에서 덜컹덜컹 움직였다. 막 바다가 보이는 길로 들어갔을 때 한 동짜리 아파트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이름은 ‘대아아파트’였다. 시골이긴 해도 코앞에 바다에 펼쳐지는 환상적인 위치였다. 이런 아파트는 얼마일까? 네이버 부동산에 검색해보니, 최근 매매된 24평 집이 8,400만 원이었다.


작년, 재작년 시골집을 알아볼 때 이런 아파트도 같이 봤었다. 시골에는 논두렁 한가운데에, 또는 이렇게 바다 바로 앞에 한 동이나 두 동짜리 아파트가 있는 경우가 있다. 당시 알아본 봐로는, 매매가가 5천만 원에서 1억 사이였다. 그때는 그런 아파트나 빌라도 충분히 좋아 보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멋진 오션뷰 아파트를 지나면서도 부럽지가 않았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인다 해도 여전히 답답할 것 같았다. 시골 살이는 어떨까, 하고 내려온 남해에서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본 나는 내가 시골과 잘 맞으며, 할머니들은 의외로 무섭지 않고, 원하는 시골집은 아파트가 아니라 마당 있는 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 남해에 온 뒤로, 어디 안 나가고 숙소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날도 있었는데, 그런 날에도 늘 밖으로 나갔다. 밥 먹을 때, 책 읽을 때, 글 쓸 때, 일할 때 자꾸 테라스로 나가고, 숙소 뒤로 난 편백나무숲 평상으로 걸어갔다. 방 한편에 놓인 책상에 앉아서도 멋진 바다를 볼 수 있지만, 실제로 밖에 있을 때와는 공간감이 아주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만에서 월세방을 보러 다녔을 때, 한정된 돈에서 좋은 집을 구하기 위해서 포기할 수 없는 것과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을 미리 머릿속에 정리해둬야 했다. 그때 포기할 수 없던 게 깨끗한(신식) 화장실과 교통 편의성이었고, 포기할 수 있는 게 주방과 베란다였다. 그런데 살아보니 바로 앞에 작은 공원이 있어서 시야가 환한데도, 베란다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아쉬워하게 됐다. 그런 이야기를, 대만 워킹홀리데이 때 만난 동생한테 했더니, 그 애는 이렇게 말했다.


“베란다…… 저는 있어도 막상 쓸모가 별로 없었어요. 빨래 건조대를 놓을 정도로 넓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오히려 언니 집 화장실이 부러웠어요. 샤워 공간이랑 세면 공간이 분리돼서 건식으로 쓸 수 있는 거요. 씻고 나와서도 세면대 쪽은 물기가 없으니까 좋더라고요. 그래서 다음에 집 구할 때 참고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과연, 나 역시 건식 화장실은 여전히 포기 못한다. 그리고 주방은 여전히 포기할 수 있다. 베란다는, 베란다보다는 정확히는 마당이 있었으면 하는데…… 언젠간 그런 집에서 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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