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덟 시쯤 아침을 먹으려고 테라스에 나가면 새로 온 투숙객이 앉아 있다. 테라스에 테이블은 세 개지만, 따로따로 앉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고,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어서 “앉아도 괜찮죠?” 하고 앉는다. 그녀는 “네, 그럼요”라고 반색하지만, 진짜 반기는 건지, 방해받았다고 생각하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오늘 그녀는 토스트와 베이컨을 굽고 그 옆에 딸기잼을 올렸다. 그리고 나와 똑같이 뜨거운 커피를 탔다. 내 앞에는 어제 독일마을에서 사 온 겉이 딱딱한 빵과 사과가 있다. 한 시간 좀 못되게 대화를 나누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화가 기분 나빴다는 말은 아니다. 회사 다닐 때, 점심시간에 한창 수다 떨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을 때 느꼈던 감정, 바로 그 감정이었다. 아주 오랜만이지만 매우 익숙한 기분이었다.
공백을 채우기 위한 더 공백 같은 대화들. 진짜 내 생각인지 감정인지도 모르지만, 일단 어색함을 감추려고 뇌가 쏟아내는 단어들. 내가 방금 무슨 말들을 하고 돌아온 거지? 우리는 커피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그 사람은 원두를 가져올까 하다가 간편하게 카누를 챙겼다면서, 어떤 커피 기구의 이름을 떠올리려고 했다. “아…… 그거 뭐지? 아, 죄송해요. 기억이 안 나네요.” 그녀는 내게 ‘죄송하다’고 했다. 단지 어떤 단어가 기억이 안 난다는 이유로. 그게 ‘나는 당신이 어렵다’는 말로 들렸다. 어쩌면 본래 죄송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살면서 나를 어려워하는 사람을 많이 본 나는, 그녀가 각별히 예의를 차리는 사람이라기보다 내가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흘렀다.
나는 틀린 글자를 고치는 교정교열이라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때로는 그게 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나도 오자와 비문을 수시로 쓴다.) 의도하는 건 아닌데, 뭐만 봤다 하면 틀린 것부터 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레이더다. 나와 있다 보면 묘한 뉘앙스에서 상대도 그걸 느끼곤 한다. 나랑 있으면 자꾸 틀린 사람이 되니까 불편해한다. 내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도 ‘죄송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런 습성을 상당 부분 일적으로 풀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일로 풀면 돈을 벌 수 있지만, 사람한테 풀면 ‘잘난 척한다’는 소리만 듣게 되니 말이다.
어제 독일마을에서 지족리로 넘어올 때,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쯤 되는 여자와 같은 버스를 탔다. 버스 기사가 그 여자에게 말을 붙였다. “표정이 왜 그렇게 어두워요?” 괄괄한 목소리이었지만 최대한 친절하고 부드럽게 말하고 싶었는지, 말끝마다 물결 표시가 들어간 듯 끝을 늘렸다. 여자는 피곤해서 그렇다고 짧게 답했다. 기사는 말했다. “나는 우리 딸 웃는 얼굴만 봐서 그런가. 그렇게 어두우면 다가가기 힘들어요~.”
나도 어렸을 때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고등학생 때 엄청 엄했던 나이 많은 수학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담임선생님도 아닌데 나를 왜 부르시나 의아했다. 선생님은 말했다. 가끔 수업 시간에 웃는 걸 보면 예쁜 얼굴인데, 대부분은 어두운 표정이라고. 그래서는 취업도, 결혼도 못 한다고 말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 말을 나쁘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큰 세상에 맞춰 살아야 하는 건 나니까 걱정이 되셨겠지. 취업은 한 적이 있지만 프리랜서이고, 결혼도 하지 않은 걸 보면, 선생님의 예언은 꽤 들어 맞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20년 뒤에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셨다.
억지로 편한 사람이 되어보려고 털털한 척, 웃기지도 않은 데 하하하 하고 웃고 너스레를 놓는 거, 모르겠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누구 씨 참 다가가기 편한 사람이네’라고 생각하련지 모르지만, 내가 송강호 급 연기력을 갖지 않은 이상 그들도 다 알게 된다. 스치듯 나오는 본래 얼굴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렇다면 발연기를 받아주는 쪽도, 발연기를 하는 쪽도, 피차 힘들 뿐이다.
오늘 아침,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도, 연기 때문이었다. 어색해도 그냥 나로서 있을걸. 그랬다면 처음에는 불편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어도 나중에는 원래 저런 사람이라는 일관성이라도 획득했을 텐데. 예전 직장동료 중에 이상할 정도로 말이 없었던 사람이 생각난다. 처음에는 다가가기가 어려웠지만 삼 년 넘게 같이 일하다 보니, 나중엔 그러려니 하게 되었고 그것대로 그녀가 편해졌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엄청 줏대 있는 사람이었다!